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17세기 프랑스 절대 왕권의 상징
프랑스 바로크 건축의 대표작이자 찬란했던 절대 왕권의 상징인 ‘베르사유궁전(Chateau de Versailles)’은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에 있다.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왕권을 누렸던 ‘태양왕’ 루이14세의 치세 50년 동안 프랑스 최고 건축가와 예술가에 의해 지어진 당대 최고의 건축 작품이다.
베르사유궁전은 원래 루이13세가 사냥용 별장으로 지었지만 이후 루이14세가 궁전 전체를 증축하고 이곳에 대정원, 공원, 별관과 기타 부속 건물들을 건축하면서 거대한 궁전으로 탈바꿈했다. 베르사유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궁전임은 물론 현재 프랑스 고전주의라고 알려진 프랑스 바로크 양식을 탄생시켰다. 이는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은 고전적 파사드, 그리고 내부의 호화로운 바로크식 인테리어와 외부의 화려한 정원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베르사유궁전을 건설한 사람들
베르사유궁전의 기원은 1631년 루이13세가 사냥용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별장을 지으면서 시작된다. 1643년 루이13세가 서거했을 때 루이14세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베르사유궁전은 왕위에 오른 루이14세가 1662년부터 약 20년 간 증·개축하면서 1682년부터 공식적인 왕궁 기능을 했다. 이후 지속적인 증개축을 거쳐 1710년 대공사를 마쳤는데 50년 동안 2만명의 인원이 동원됐다. 완성되던 해 루이14세의 나이는 72세였다. 베르사유궁전 증축은 루이14세가 1660년 재무대신이던 푸케의 새로운 성(보르비콩트성)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가 성의 웅장함과 공원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루이14세는 1662년 대정원을 먼저 착공했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해 ‘U’자형 궁전으로 개축했다. 궁전 건설에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설계에는 루이 르보(1612~1670), 실내 장식에는 샤를 르브룅(1619~1690), 정원 설계에는 앙드레르 노트르(1613~1700) 등이 참여했다.
1654년 왕실 건축가로 임명된 루이 루보는 필리베르 르 루아가 지은 루이13세의 베르사유 별장을 개축한 다음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원래 건물의 3면을 확장하고 테라스를 추가했다. 르보가 죽은 뒤 아르두앵 망사르(1646~1708)가 왕실 건축가가 됐고 그는 궁전의 바닥 면적을 5배로 늘렸다. 그리고 르보가 설계한 ‘거울의 방’을 오목한 파사드를 이용해 멋지게 완성하고 왕실 예배당도 설계했다.
이후 루이15세 때에는 바로크 양식을 섬세한 로코코 양식으로 교체했고 1768년 자크 앙주 가브리엘이 넓은 공원 안에 왕의 은신처인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 궁전을 추가로 지었다. 가브리엘은 루이16세 치세인 1770년에 궁전의 마지막 주요 건축물인 1000석 규모의 신고전주의 오페라극장을 건설하면서 베르사유궁전이 완성됐다.
베르사유궁전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장식을 만들어낸 샤를 르브룅은 1661년 루이14세에 의해 베르사유의 모든 장식 감독을 맡았고, 다음해 왕실 화가로 임명됐다. 르브룅은 점성술과 신화를 주제로 한 프레스코 천장화를 통해 루이14세의 업적을 묘사했다.
■광대한 정원과 분수, 조각은 조형미의 극치
베르사유궁전은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고1680년대에 다시 건물 2동(棟)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면서 건물 전체 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게 됐다. 궁전은 정원 쪽에 위치한 거울의 방 등 크고 작은 15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방들의 배치는 거울의 방 중심으로 오른쪽에 왕이 거처하는 방이, 왼쪽은 왕비가 거처하는 방이 배치되는 등 대칭 구조다
베르사유는 궁과 광대한 정원, 크고 작은 분수와 조각들이 같이 어우러져 조형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 규모를 살펴보면 정원의 면적은 100㏊(30만평), 숲은 총 14개이다. 정원을 제외한 베르사유 영지가 모두 공원으로, 그 면적은 600㏊(180만평)에 이르고, 벽의 길이만도 20㎞나 된다.
궁전 뒷쪽 정원은 전형적인 프랑스 정원이다. ‘정원사의 왕’으로 불리는 앙드레 르노트르가 설계했다. 그는 루이13세의 정원사인 장 르노트르의 아들로 프랑스의 지형과 풍토에 맞는 평면원(平面園) 수법을 고안해 베르사유에 적용했다. 이 정원의 주요 특징은 큰 축의 개념을 도입해 설계한 것이다.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여기에 조각과 분수 등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즉, 루이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따라 라톤 분수(Bassin de Latone), 아폴론 분수(Bassin de Apollon), 십자 모양의 대운하(그랑운하·Gran Canal) 등을 배치하고 꽃밭과 울타리, 분수가 있어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라톤여신상이 있는 라톤 분수는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것으로 아폴론과 어머니가 당한 수모를 제우스가 복수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아폴론 분수는 조각가 튀비가 1670년 제작한 것으로 태양의 신 아폴론을 묘사한 걸작이다. 여기서 태양신은 루이14세를 의미한다. 분수를 지나면 나무와 관목, 잔디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있고 대리석 아치로 만든 기둥을 지나면 호수가 나타난다. 이곳이 그랑운하로 루이14세가 뱃놀이를 즐기기 위해 만든 곳이다. 베르사유에서는 수직 물대포,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 폭포 등을 이용해 물을 매우 역동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절대 왕권의 상징물
태양왕 루이14세 치세 50년에 걸친 대공사를 통해 완성된 베르사유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대궁전으로 건물 자체는 물론 내부 장식과 소장품들, 궁전 뒤편의 광대한 정원까지 그 규모가 매우 웅장하고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건축물은 찬란했던 절대 왕권 절정기의 상징이자 프랑스혁명을 가져온 귀족적 퇴폐의 온상이기도 했다. 베르사유는 왕궁 기능을 갖춘 1682년부터 프랑스대혁명으로 루이16세와 왕실이 파리로 옮기게 된 1789년까지 약 107년 간 프랑스의 정치적 수도이자 통치 본부였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당시 절대 왕권의 상징물로 약탈과 파괴의 대상이 되면서 이후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베르사유궁전은 1783년 미국 독립혁명 이후 미국과 영국 사이에 체결된 파리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체결된 베르사유조약 등이 거울의 방에서 이루어지는 등 국제 행사의 단골 무대가 됐다.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오늘날 국립박물관이자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