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모(66)씨는 요즘 틈만 나면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아다니며 전세 시세를 알아보고 있다. 이씨는 "3월까지만 해도 고덕동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20평형대는 3억8000만원 정도였는데, 최근엔 한 집주인이 4억5000만원을 부르더라"며 "여름에 이사를 가야 할 것 같은데 하루가 다르게 전세금이 올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전체 5930가구인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 둔촌주공의 이주가 임박하면서 서울 동남권 전세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최근 이주비 대출 은행 우선협상대상자로 KEB하나은행·신한은행·IBK기업은행·KB국민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 등 6곳을 선정했다. 다음 달 재건축 사업의 사실상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해 이르면 7월부터 이주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둔촌주공처럼 6000가구에 가까운 초대형 단지가 한꺼번에 이주에 나서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수급 불균형으로 서울 강동·송파·광진구를 비롯해 인근 위례신도시, 경기도 하남 일대에서 전세난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6000가구 이주 임박…전세 시장 요동
한국감정원은 지난 20일 "서울 강동구 아파트 전세금이 전주(前週)보다 0.05% 올라 작년 7월 이후 40주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강동구는 작년 11·3 부동산 대책 등 정부 규제와 올해 초 입주를 시작한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3658가구) 등 대단지 입주 물량을 소화하느라 전세금이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달 초 둔촌주공아파트 이주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단번에 시장 분위기가 반전했다.
전세 수요자가 체감하는 가격 인상 폭은 훨씬 가파르다. 고덕동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전용 59㎡ 전세는 1월 3억7000만원이던 것이 이달 초 7층 매물이 4억3000만원에 계약을 마쳤다. 강동구 강일동 '고덕리엔파크 2단지' 전용 84㎡는 올 1월 3억4800만원에 전세가 나갔지만, 4월엔 4억3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둔촌주공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성내동 '올림픽파크한양수자인'은 입주 1년이 안 된 새 아파트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전세 물건이 완전히 사라졌다.
둔촌주공과 맞닿은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선수기자촌'은 학군 프리미엄이 가세해 전세금이 오르고 있다. 둔촌주공에서 전세로 사는 직장인 김모(48)씨는 "초등학생 자녀 때문에 올림픽선수촌 30평형대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연초보다 전세금이 5000만원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오륜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여름 이후 둔촌주공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전세 시세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매물을 거둬들이는 집주인이 많다"고 말했다.
◇경기 하남·위례신도시까지 영향 미쳐
1980년 입주한 둔촌주공은 현재 5930가구를 재건축해 지상 35층, 총 1만1106가구 규모의 초대형 단지로 탈바꿈한다. 9510가구를 건설 중인 서울 송파구 가락동 '송파헬리오시티'(가락시영 재건축)보다 크다. 워낙 대단지여서 시공사로 현대건설·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 4곳이 참여한다.
둔촌주공 외에도 서울 '강남 4구' 지역에서는 올해 재건축 이주 수요가 넘쳐난다. 5월에는 서울 서초구 '무지개아파트' 1074가구, 6월에는 강동구 고덕동 '고덕주공 6단지' 880가구가 이주를 시작한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4단지는 이르면 7월부터 이주에 나서고, 강동구 길동 '신동아' 972가구도 올해 안에 관리처분을 끝내고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재건축 이주 수요가 촉발한 전세난이 경기도 하남과 성남, 위례신도시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이 이주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빌라·다세대주택으로 전세난이 옮아갈 수 있다"며 "서울은 송파구 가락시영 재건축 9500여 가구가 본격 입주하는 2019년 초까지 전세금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