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레슨]“경매 입찰표 작성 실수는 구제안돼”
부동산 경매 입찰에서 숫자 ‘0’을 하나 더 붙여 쓴 탓에 수 천 만원을 날릴뻔한 투자자가 가까스로 입찰보증금을 돌려받는 촌극(寸劇)이 벌어졌다.
1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따르면 지난 4일 두번째 경매에 부쳐졌던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현대연예인아파트 전용면적 84㎡가 최저입찰가(2억7600만원)의 10배가 넘는 28억9810만원에 낙찰됐다. 최초 감정가 3억4500만원과 비교하면 낙찰가율이 무려 840%에 달한다.
알고보니 낙찰받은 김모씨가 최저입찰가보다 1000만원 정도 높은 2억8981만원을 기재하려다가 실수로 입찰금액에 ‘0’을 하나 더 붙인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84㎡는 지난 1분기 평균 3억8600만원에 거래됐다. 입찰 당시 이 물건 2위와 3위 응찰가도 각각 3억5000만원, 3억4100만원에 그쳤다.
문제는 김모씨가 어이없는 실수로 ‘0’을 하나 더 썼다고 해서 구제받을 수 없다는 것. 김씨는 입찰보증금을 모두 날리거나 낙찰가격대로 매입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대법원 판례에는 “최고가 매수신고인의 착오로 자신이 본래 기재하려고 한 입찰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기재했다는 이유로는 매각을 불허할 수 없다”고 돼있다. 이는 실수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경매를 지연시키기 위해 일부 이해관계자가 고의로 터무니없는 고가를 써내는 등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씨는 운좋게도 보증금을 날리지 않고 구제받을 길이 열렸다. 법원이 지난 11일 이 물건의 매각을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린 탓이다. 의정부지방법원 관계자는 “(매각불허가 결정을 한 이유는) 낙찰가격과는 상관없다”면서 “송달 누락 때문”이라고 짤막하게 밝혔다.
법원은 최고가매수신고인이 결정되면 1주일 동안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들은 후 매각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법원은 ▲강제집행을 허가할 수 없거나 집행을 계속 진행할 수 없을 때 ▲매각물건명세서의 작성에 중대한 흠이 있는 때 ▲경매절차에 그 밖의 중대한 잘못이 있는 때 등의 경우 직권으로 매각을 불허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관련 문서가 제대로 송달되지 않았다는 채무자·채권자 등 다른 이해관계인의 의견으로 매각이 불허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입찰보증금(최저매각가격의 10%) 2760만원을 날릴뻔한 김씨는 가까스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경매업계 관계자들은 “투자자들이 법원을 찾아 긴장한 상태에서 입찰가를 쓰다 보면 간혹 ‘0’을 하나 더 써서 터무니없는 고가 낙찰이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면서 “순간의 실수로 수천만원을 손해 보지 않으려면 집에서 미리 입찰표를 작성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