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사막을 가로지른 萬里 인공 물길
리비아 정부는 사하라 사막의 석유 매장 분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지하 호수를 1950년대에 처음으로 발견했다. 발견된 수량은 나일강의 200년 유량에 해당할 만큼 방대했다. 리비아 정부는 당초 지하 호수를 찾은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곡물을 재배하는 농지 개발 계획을 구상했다.
하지만 이보다 끌어올린 지하수를 송수 관로를 통해 이동시켜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평야에서 활용하는 방안이 더욱 경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위대한 인공강 사업(Great Man-made River Project)’의 야심찬 계획은 구체화됐다. 사막에서 펼쳐지는 역사적 도전의 현장으로 가보자.
■녹색 혁명을 준비하다
대수로 사업의 마스터플랜은 영국 업체인 ‘브라운 루트(Brown Root·현재의 미국 KBR)’가 수립했다. 1981년 우리나라 동아건설은 대수로 사업 정보를 입수하고 회사 내부에 비밀 전담반을 구성해 입찰 준비에 들어갔다. 1982년 5월 동아컨소시엄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31개의 건설사가 참여한 치열한 수주 경쟁에서 최종 선정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지루한 협정을 거치게 되는데 대폭적인 사업 범위의 변경을 포함하는 공식 계약은 1983년 11월에야 체결된다. 모기업인 동아건설은 송수관 매설을, 동아콘크리트는 송수관 생산을, 대한통운은 송수관 운반을 맡는 등 효율적인 역할 분담을 발주처가 높이 사 결국 계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리비아 대수로 사업의 핵심은 1단계 동부축과 2단계 서부축으로 구성됐다. 1단계 공사 규모는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38억 달러에 달했다. 1일 200만t의 송수 능력을 갖춘 총 1895㎞의 관로 2개 라인을 취수지부터 벵가지(Benghazi)까지 건설하는 작업이다. 2단계 공사는 트리폴리(Tripoli)까지 1일 송수 능력 250만t을 갖춘 총 1729㎞의 관로 매설 작업이다. 1단계와는 달리 대안 입찰의 성격을 가진 2단계 공사도 동아건설컨소시엄이 계약자로 선정되었는데, 여기에는 1단계 공사용 공장과 장비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공사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이 주효했다.
■죽음의 땅에서의 악전고투
북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리비아는 국토의 90%가 사막이다. 대수로에 쓸 송수관을 만든 공장 부지 중 하나인 사리르(Sarir)는 ‘죽음의 땅’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리비아의 건설 환경과 작업 조건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리비아에서 확보 가능한 자재는 골재, 시멘트, 물뿐이었다. 나머지 모든 기자재는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 조달하거나 자급 자족해야 했다. 더욱이 사막의 모래와 바람은 순식간에 지형을 바꾼다. 자동차 유리창도 1년만 지나면 마모돼 시야 확보가 불가능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송수로 건설 사업 자체는 단순 공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요구 기술과 소요 물량 측면에서 체계적인 계획과 종합적인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지름 4m, 길이 7.5m, 최대 무게 80t의 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 원통형(Pre-stressed Concrete Cylinder·PCC) 송수관은 미국 프라이스 브러더즈사와 기술 제휴를 통해 제작됐다. 1단계 공사에서만 24만 6000여 개의 송수관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하루 최고 200개의 송수관을 생산할 수 있는 5개의 생산 라인이 포함된 송수관 제작 공장이 건설됐다. 1개 생산 라인의 길이만 2.2㎞에 달했다.
제작된 송수관을 매설 지역까지 운반하는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다. 사리르와 브레가(Brega) 두 공장에서 각각 2개조의 운반팀이 구성됐다. 60대의 차량으로 조직된 1개조의 운반팀이 차량 간격을 500m씩 유지하면서 이동하면 그 행렬의 총 길이가 30㎞에 달했다. 조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트렌치 굴착과 송수관 매설 작업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부 구간에서는 굴착량의 80%가 사암(砂岩·sandstone)으로 구성돼 공정 진행을 더디게 만들었다. 송수관 매립 이후에는 물 한 방울 새지 않도록 엄격한 품질 검사 과정을 거쳤다. 8㎞마다 24시간 동안 실제 압력의 120%로 수압 시험을 실시한 후, 완전한 수밀성이 검증된 경우에만 되메우기 작업으로 공정을 마무리했다.
■사막에 인공 물길을 내다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 1991년 8월 28일 역사적인 1차 통수식이 열렸다. 당초에는 1992년 12월 완공 예정이었지만 동아콘소시엄은 일부 구간을 2단계 공사와 병행 시공함에 따라 1년 4개월을 앞당겨 완료했다. 리비아 사막을 가로지른 물길이 터지자, 벵가지 시민들은 환호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1996년 7월 31일에 2단계 통수식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거행됐다. 당시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대수로 사업을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극찬했다.
대수로 공사 이전, 리비아의 경작 가능 면적은 지중해 연안의 해안으로 국한돼 전 국토의 1.4%에 불과했다. 이제는 대수로 인근에 풍부한 농업용수를 제공할 수 있어 경작 가능한 농지가 한반도 면적의 6배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수로 사업의 수혜 지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극심한 물 부족 피해를 입고 있던 대도시도 포함된다. 벵가지에서는 중단했던 도시개발 사업들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건설인의 손으로 1·2단계 공사는 1984년 1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20여 년에 걸쳐 성공적으로 완수됐다. 대수로 사업이 착수된 지 30년이 지난 가운데 3~5단계 지류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여곡절도 많다. 대수로 사업을 주도했던 카다피 정권은 붕괴돼 향후 사업 추진이 유동적인 측면이 있다. 1·2단계 공사를 수행했던 동아건설 역시 후속 단계 수주가 유력했지만 IMF외환위기 이후 과다한 부채 등의 이유로 파산을 선고받았고, 다른 건설사들이 후속 사업에서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대수로 신화를 만든 주인공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리비아 대수로 사업은 대한민국 건설인의 도전정신이 창조한 ‘토목 건설 신화’로 남아 있다. 대수로 사업의 착공 이후 투입된 자재, 인력, 장비 부문에서 다양한 신기록을 세웠다. 1단계 사업의 PCC 송수관 제작에 투입된 강선의 총 물량은 지구 87바퀴를 돌 수 있는 길이였다. 1단계 공사에는 연인원 1100만명의 한국인 근로자와 연 550만대의 건설 중장비가 동원됐다. 사막 한가운데서 펼쳐진 도전의 성과는 한국 건설인의 강인함과 근면성을 보여준 역작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