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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일대 '한평 싸움'…빌딩 꼭대기층 걷어낸 이유

뉴스 최락선 기자
입력 2017.04.14 07:10 수정 2017.04.15 11:52

[공간의 변신] 눈이 번쩍 뜨이는 근생시설

“외관 디자인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건물 이름도 ‘나풀나풀’로 짓고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을 사용했다.”

전상규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소장이 설계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나풀나풀' 빌딩. 폴리카보네이트로 외관을 바꿨다./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집이든 빌딩이든 리모델링을 하는 건축주는 건물 연면적을 최대한 늘리고 싶어 한다. 늘어난 면적 만큼 경제적 이익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연면적 늘리는 리모델링’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는 동네가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대로 이면도로의 빌딩이 그렇다. 왜 그럴까.

이 동네는 보통 꼬마빌딩으로 불리는 근린생활시설(근생)이 밀집해 있다. 건물의 연면적이 커질수록 주차면적을 늘려야 하는 탓에 가장 임대수익이 많은 1층 면적은 쪼그라들게 된다. 연면적을 꽉 채우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1층 임대면적을 최대한 확보하려면 연면적을 줄여야 한다. 이 동네는 1층 임대면적을 넓히는데 머리를 싸매는 이른바 ‘한 평(3.3㎡) 싸움’이 치열하다.

■1층 면적을 늘리는 리모델링

전상규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소장이 맡은 근생 리모델링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전 소장은 “임대료가 좋은 1층 면적을 넓히려고 건물 4층 바닥을 없애 연면적을 줄였다”며 “그 효과로 1층 주차구획이 4개에서 3개로 줄었고 그만큼 1층 임대 면적은 늘어났다”고 했다.

4층을 과감하게 걷어낸 것은 빌딩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4층 접근성이 떨어지고 임대도 잘 안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를 새로 넣자니 전체 임대면적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4층 바닥(56.78㎡)을 걷어내니 1층 주차구획은 1개면 줄일 수 있게 됐고 27.03㎡의 새로운 임대공간이 생겨났다. 수평 증축으로 2층 11.6㎡와 3층 14.54㎡ 공간도 늘었다. 리모델링 이전에도 이 건물은 근생이었기 때문에 구조를 크게 건드릴 건 없었다. 다만 2~3층 증축에 따른 보강작업을 했다.

나풀나풀 빌딩의 변화 모습. 왼쪽부터 2013년, 2015년, 2016년 모습./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나풀나풀 빌딩을 측면에서 보면 곡선미가 도드라진다./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옆 건물로부터의 시선 차단을 위해 사용한 카멜레온 도장 루버./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외관 디자인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건물 이름도 ‘나풀나풀’로 짓고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을 사용했다. 백색의 완전한 투명에서 불투명까지 4가지를 사용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단면이 벌집모양이어서 빛이 투과되고 햇볕을 반사하는 효과를 낸다. 밤에 조명이 켜지면 나풀나풀한 생명력마저 느껴진다. 옆 건물과 바짝 붙어있어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카멜레온 도장 루버(louver)를 사용했다. 디자인의 우수성이 인정돼 작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보편성을 기다리는 건물들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약자로 ‘보·건·소’를 이끌고 있는 전상규 소장은 회사 이름에 대해 “보편성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주택, 건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2014년 독립한 뒤 내놓은 결과물은 시선을 붙잡는다. 전 소장은 “내가 완성한 건물들이 시간이 흘러 오히려 보편성을 갖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임대 건물을 하면 내부 공간을 완성하지 못한 아쉬움이 굉장히 크거든요. 주택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적인 갈증을 채웁니다. 임대 건물 쪽으로 치중하는건 아니구요. 내부까지도 디자인하고 싶은 욕심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내외부 다 관여할 수 있는 사옥이라면 가장 좋을거 같아요”

지금은 눈에 띄지만 시간이 흘러 보편성을 갖는 건물로 기억되길 바라는 전상규 소장이 지은 근생시설 3곳을 소개한다.

일조권 사선제한이 디자인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라파엘 빌딩./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일조사선을 수용한 디자인 ‘라파엘 빌딩’

전용주거지역이나 일반주거지역은 집을 지을 때 이웃집의 일조권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일조권 사선제한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일조권 사선제한의 제약을 디자인에 적극 반영했다. 테라스를 도드라지게 설계해 테라스에 사람이 북적이는 풍경으로 인해 거리가 활기찬 느낌을 주도록 했다. 계단을 외부로 뺐고 일조사선을 따라 기울어진 구조물이 벽기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내에는 기둥이 없다. 1층 주차장 뒤로 오목하게 실내 쪽으로 들어갔고 2층부터는 볼록하게 돼 있다.

큼지막한 창문이 인상적인 '사각사각' 빌딩. 지금은 한 연예기획사의 사옥으로 쓰이고 있다./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허가 변경 곡절 겪은 ‘사각사각’

건축주는 원룸 오피스텔을 짓되 3~4년 뒤에 근생시설로 용도를 바꿔 임대료를 받고자 했다. 왜냐하면 동네는 주택과 근생이 혼재해 있었고 근생이 주가 되는 시점을 3-4년 뒤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외뢰를 받은 전 소장은 처음에 원룸으로 설계하고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골조가 올라가는 와중에 건축주는 생각을 바꿨다. 생각보다 빨리 동네 풍경이 근생시설로 변화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3~4년 뒤를 고려해 설계를 고쳐 재허가를 받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건물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노출콘크리트로 치장된 '엘 시엘로' 빌딩./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종상향을 기대한 ‘엘 시엘로’

전용주거지역에 위치한 이 건물은 지대가 높아 내려다 보는 조망이 나쁘지 않아 1층과 2층에 테라스를 배치했다. 일반주거지역으로 종(種) 상향이 됐을 때를 대비해 옥상에 루프탑을 얹힐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전용주거지역에서 일반주거지역으로 바뀌면 건물의 건폐율과 용적률이 늘어난다. 몇 년 후를 고려한 건축주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외부 기둥은 노출콘크리트 질감을 그대로 살렸다. 엘 시엘로(el cielo)는 스페인어로 하늘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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