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전관예우도 마다한 그는 왜 전원으로 사라졌나"

뉴스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CEO
입력 2017.03.07 07:00 수정 2017.04.03 15:45

[남자의 집짓기] ⑭왜 전원으로 내려와야 하는가

그는 정무직이 아닌 공직자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시골로 내려왔다.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을 때부터 그 자신만의 은밀한 모의는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전관예우로 모시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세상에서 사라졌다. 서울 교외 한적한 마을에 손수 전원주택을 짓고 유유자적했으나 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에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겼고, 60 년 평생 알고 지낸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거처와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전화번호를 지웠고 죽마고우조차 그의 자식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현재로부터 완벽하게 실종 상태였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과거를 그는 왜 지우려고 했을까.

“세상에서 누릴 건 다 누려 보았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세상이 만든 잣대에 자로 잰 듯이 살아왔다. 모든 인연을 끊고 ‘나’로 다시 태어나 살다 가려고 한다”. 마을에서는 그저 ‘김씨’로 통하는 그가 그렇게 사는 이유였다.

작가 권여현이 그린 '밀레-만종'. 그림이 보여주는 목가적인 풍경과는 정반대로 그림속의 소품들이 암시하는 부부의 삶은 고단하지 그지 없다. 전원속의 삶이란 것도, 세속의 삶도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은 인간을 놓아주는 묘한 힘이 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60세 은퇴 후 세상 등지고 사라져

지금은 누구에게나 로망이 아닌 현실이 되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서울을 벗어나 교외 전원주택에 살려면 돈키호테 같은 용기가 필요했다. 전원주택 칼럼을 쓰면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1990년대 중반 무렵, 그를 만났다. 신문기자의 직을 내려놓고, 그의 살아생전에는 글로 쓰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나서야 그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그의 생몰을 알지 못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묵혀뒀던 사연을 이제는 풀어도 될 듯하다.

충남 천안에서 한참 내려간 시골에서 작은 과수원을 하던 이도 그랬다. 세탁소를 하면 네 남매를 다 키우고 나서 ‘내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자식들에게 선언하고 탈속(脫俗)을 감행했다. 자리잡힐 때까지는 자식들도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 하고 많은 인연을 모두 끊은 것은 물론이다.

60세에 은퇴하면 적게는 500개, 많게는 1000여 개 넘는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저장돼지만, 그 전화번호가 10분의1로 줄어드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 않는다. 그들은 단칼에 그 인연을 끊었다.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한 것은 간웅(奸雄) 조조였다. 그들은 반대의 삶을 살았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나서야 자유(自游)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때는 그래야 했다. 그들보다 3~4년 늦었지만, 그 무렵 전원생활을 시작했던 필자는 너무 세상에 깊이 발을 담근 상태라 감히 탈속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 덕분에 주말마다 밀려드는 객들을 대접하느라 1년이면 돼지 서너 마리를 숯불에 흠향(歆饗)해야만 했다. 손님 접대에 지친 집사람이 한번은 손님이 오는 날 집을 나가버린 황당한 일도 있었다. 세상 인연을 놓지 않는 대가는 그렇게 성가셨다.

■“집이 사람을 만든다! 그런 집에서?”

그랬던 전원생활이 20년에 이르고 보니 겪을 만큼 겪고, 알만큼 알게 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그래도 내가 인생에서 이거 하나는 건졌다’는 것. 아이들이 유치원 들어갈 때 경기 양평 ‘소나기마을’ 인근으로 내려갔다. 남들은 올라오는 길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미쳤다고 하지 않은 친구들이 없었다.

20여 년전 아이들이 유치원 들어갈 때 경기 양평의 소나기마을 인근으로 내려갔다. 사진은 소나기마을. /양평군 제공


한 학년에 한 학급뿐인 초등학교를 나와 경기 이천, 가평을 두루 거쳐 시골학교만 맴돌다가 어느덧 군대에 가고, 출가하게 된 아이들은 ‘아빠, 엄마에게 가장 감사하는 일’로 그런 시골에서 키워준 것을 꼽는다. 철이 드니 그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알겠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대학생이 되고부터 어느 순간 서울에서만 자란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들이 갖지 못했지만 무척 부러워하는 것, 그 ‘다름’이 바로 몸속의 ‘촌놈 DNA’였다.

양평에서 같은 마을에 살던 화가 선생님은 서울 한복판에서 시골로 화실을 옮긴 계기를 이렇게 털어 놓았다.

“미술학원에서 어느 순간 그림만 보고도 그 아이가 단독주택에 사는지, 아파트에 사는지 알게 되더라구요. 표현 방법, 색감의 차이 그런 게 확연하게 드러나는 걸 보고 깨달았죠.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런데 시골집과 서울 아파트는 얼마나 또 다를까”. 윈스턴 처칠이 그랬다고 한다. ‘인간은 집을 만든다. 그리고 집이 사람을 만든다’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파트를 많이 짓는 어떤 건설업체가 이런 광고를 한 적이 있다. 화가 밀레의 ‘만종’을 연상시키는 목가적 농촌 들녘이 액자 속 그림으로 화면 가득히 등장하더니 서서히 사라지면서 그림은 거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으로 변한다.

그리고 잔잔하게 흐르는 카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이 있었기에 자연주의 화가 밀레가 탄생했을지 모릅니다. 집이 사람을 만듭니다”

한 편의 서정시처럼 참 잘 만든 광고였다. 그러나 그 광고가 주장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의 ‘기막힌 역설’에 어이가 없었다. 정작 그 회사는 그런 집을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이 사람을 만든다고! 그런 집에서?’

■“평생 아파트에 사는 건 비극”

그게 아니라는 것은 아파트 문화의 중심지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더 잘 안다. 강남의 신흥 재력가로 한창 잘나가던 그가 주말주택을 상담하면서 털어놓은 얘기는 이랬다.

“내가 성공한 이유가 무엇일까. 흙속에서 뒹굴며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촌놈의 뒷심이 없었다면…. 그런데 맨날 게임기만 끼고 살고, 지하철도 혼자 탈줄 모르는 아들 녀석이 자수성가는 고사하고 내가 물려준 것을 제대로 지켜내기나 할까?”

시골이 서울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잘 보여준 영화 '집으로'. 일시적 피난이 아니라 아이를 완전한 '촌놈'으로 키우려면 부모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주말만이라도 아들과 함께 흙속에서 뒹굴고 싶었다고 한다. 한때는 ‘놀이과외’를 시켰다. 체육학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강 고수부지로 데려가서 흙장난을 하면서 마음대로 뛰놀게 하고는 집에 데려다 주는 ‘시골놀이’ 과외였다. 그런 것조차 과외를 통해 해결했다는 말을 듣고 “과연 강남이네”라며 탄복했다. 그는 그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강남에서 1시간 거리에 작은 주말주택을 장만하고 ‘포서드족(Four-Third族)으로 산다. 4일은 서울, 주말 3일은 시골주택에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출근하는 4도3촌(四都三村)의 생활패턴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실과의 타협이다.

시골생활은 아이보다 부모에게 많은 불편과 희생을 강요한다. 지금까지 전원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거듭 확인한 것은 부모들이 걱정하는 그런 것들에 정작 아이들은 전혀 불편해 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건 있다. 그만큼 부모들이 성가신 일이 많다. 서울에서는 돈으로 해결되던 모든 일들이 부모의 수고를 통해야 해결된다. 그게 시골생활이다. 사실은 부모가 그걸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아이의 등 뒤에 숨은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수년간 임종직전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켰던 어떤 호스피스가 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은 ‘내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시골집에 한번 살아 본다고 인생을 내 뜻대로 산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상 아파트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생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것은 비극이다. 한번은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가장으로 인생을 시작할 시점, 그리고 마감해야 할 시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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