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학계의 원로인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부)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마약’과 ‘폰지게임’에 비유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부동산 경기 부양정책이 투기를 조장하고, 결국 거품 붕괴 위험을 더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19일 한국경제학회의 학회지 ‘한국경제포럼’에 게재한 ‘부동산 관련 정책에 관한 두 가지 단상’ 논문에서 “역대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서민 주거안정에 두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무시하고 경기 부양 수단으로 남용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고 지적했다.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싶은 정부에 부동산시장 부양책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매력을 갖고 있어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IMF 외환위기를 맞았던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역대 정부 모두가 부양책을 써왔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를 살리는 고육책이라는 이유로 부양책을 쉴새없이 쏟아냈고, 노무현 정부는 10개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을 부채질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률 7% 달성 공약을 위해 또 다시 부동산 부양책을 꺼냈고, 박근혜 정부는 사상 초유의 저금리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풀어버려 모두가 투기에 뛰어들라고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 교수는 “지난 50여년 간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가 꺼내 든 카드는 부동산시장 부양책이었고 그 때마다 주택가격은 수직 상승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면서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이런 근시안적 태도는 마치 ‘폭탄 돌리기’라도 하는 듯 ‘내 임기 동안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식의 무사안일 혹은 무책임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부동산시장 부양책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 집값 급등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빼앗아가고 전월세 가격 동반 상승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는 현재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투자사기 수법인 ‘폰지게임(Ponzi Game)’에 비유했다.
폰지게임은 고배당을 미끼로 초기 투자금을 조달한 뒤 만기가 되면 제3자에게서 새로 받은 투자자금으로 앞의 투자금을 갚는 사기수법이다.
이 교수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주택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폰지게임은 언젠가 그 끝자락에 이르게 되고, 이 단계에 이르면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시장을 떠받치려 발버둥 친다고 해도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부동산시장 부양책은 바로 그 순간에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을 더 크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스런 도박이 아닐 수 없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부동산 투기 억제의 고삐를 성급하게 풀어놓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며 무력화된 종합부동산세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납세자 반발을 감안해 종부세 과세기준을 올려 중산층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보완으로 대처할 수 있다”며 “늘어나는 복지 수요 때문에 증세가 필요하다면 첫 후보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종부세”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종부세 도입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가 미미한데다 이중 과세 논란이 여전해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