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콘크리트 수돗가를 집 가운데 배치한 이유

뉴스 최락선 기자
입력 2017.02.15 06:30

[공간의 변신] 살맛나게 만든 협소주택 ‘ㅁㅁㄷ’

집을 짓기로 하고 계약을 맺은 예비 건축주에게 ‘건축학 개론’ 시험지를 들이댄 건축가는 어떤 사람들일까.

‘푸하하하 프렌즈 건축사사무소’의 세 남자(윤한진·한승재·한양규 소장)는 대지 19평 땅에 기념비적인 ‘작은 집’을 짓고 싶은 욕심이 났다. 이들은 이미 카페를 목욕탕처럼 꾸며 사람을 끌어들이고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의 한 패션잡화점을 독특한 인테리어로 명소로 만든 바 있다.

이 집은 집 앞 도로가 6m이기 때문에 신축을 했지만 집이 안쪽으로 물러서지 않았다.(위) 옛 집의 모습(아래)/사진=노경 작가



다만 신축 주택은 두 번째. 잠시 숨을 골랐다. 미팅을 거듭하면서 예비 건축주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시험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이 자그만치 30 문항이었다.

“저희가 아이디어를 내면 정답으로 여기는 거 같았어요. 이렇게 진행되면 살기 힘든 집이 될텐데…. 오히려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취향을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었죠.”

답안지를 받고 정리된 컨셉은 ‘집다운 집’이었다. 어린 아이가 있는 30대 가장은 집 안 어디에 있어도 가족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있는 집. 널브러져 있기 좋은 집을 답안지에 적었다. 한승재 소장은 여기에 효율성을 높이고 ‘사는 맛’을 더하기로 했다. ‘작은 집’에 산다고 집에서 누려야할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사는 맛’으로 확장됐다.

계단이 반층씩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베이지색 부분은 햇볕이 들어오는 공간을 나타낸다./푸하하하 프렌즈 건축사사무소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지은 이 집은 ‘면목동’의 초성을 따와 ‘ㅁㅁㄷ’으로 쓰고 엠엠디로 읽는다. 대지면적 62.8㎡, 건물은 지상 3층과 옥탑을 포함해 연면적이 93.98㎡(28.42평)다. 옛 집을 매입해 헐고 새 집을 짓는데 땅값과 공사비 등을 모두 포함해서 4억대 중반이 들어갔다.

■1층의 맛, 대청마루 같은 통로와 마당

주차장과 통로 사이의 홀딩도어를 열면 마당으로 쓸 수 있다./사진=노경작가


현관을 열고 들어서는 1층 통로에서부터 ‘사는 맛’을 고려했다. 통로는 현관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의미없는 공간이 아니라 대청마루 노릇을 하고 있다. 바닥은 붉은 벽돌을 깔았고 벽쪽으로 긴 의자가 있어 앉아 쉴수 있고 의자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을 수도 있다.

통로 왼편의 홀딩도어를 열면 제법 큰 마당이 보인다. 원래 법적인 용도는 주차장이지만 차를 빼면 통로와 주차공간이 합쳐져 마당으로 쓸 수 있다. 날씨가 추우면 홀딩도어를 닫고 벽돌 바닥의 보일러를 돌려도 괜찮다. 텐트를 치고 ‘야외취침’이 가능할 정도의 온기가 돌기 때문이다.

한승재 소장은 “땅이 좁다고 뭔가를 포기하는 게 애초부터 싫었다”며 “필요에 따라 성격이 바뀔 수 있도록 중의적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다목적 수돗가도 사는 맛

주방(위)과 집 안일을 하는 수돗가(아래)는 1층에 있다./사진= 노경 작가


통로 끝에서는 콘크리트 수돗가가 있다. 수돗가 계단을 거쳐야 집안 부엌으로 들어간다. 수돗가는 부엌과 함께 집안 일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다용도실 역할도 한다. 세탁기는 벽 안으로 들어가도록 수납해 깔끔하다. 보통의 경우, 집 구석에 있는 다용도실을 집의 가운데에 놓은 이유는 뭘까.

“화장실이나 다용도실에서 쪼그려앉아 걸래를 빠는 모습 보기 싫잖아요. 구석에서 하녀같이 일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가족들이 집안 일을 함께 하거나 적어도 알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수돗가에 서면 정수리로 햇볕이 내려앉는다. 부부가 나란히 서면 이불 빨래하기도 편하다. 마당에 텐트를 치면 캠핑장의 수돗가가 된다. 집에 들어가기 앞서 손을 씻거나 계단을 올라가 선 채로 발을 씻기도 편하다.

■햇볕을 품은 집

지붕에서 큰 창을 내 집안에 있어도 집 밖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사진= 노경 작가


수돗가 계단을 올라가면 주방→거실→화장실→안방→작은방→옥상으로 이어진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지붕의 창에서 내려오는 햇볕 때문에 집 안이 환해진다. 옆집과 2m도 떨어져 있지 않아 전에는 창을 내도 햇볕이 집안으로 들어 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지붕에 창을 내고 햇볕이 1층까지 내려꽂히도록 계단 옆 공간을 덜어내고 비웠다. ‘작은 집’에서 공간을 어떻게든 넓히는 통념과는 배치된다. 한 소장은 “여백의 미”라고 했다. 현학적인 표현이 아니다. 집 내부는 이미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거실과 안방에는 코너창을 냈다. 밖에서 집을 볼 때 탁 트이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코너창으로 스며드는 햇볕도 충분하고 창 앞에 서면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 앞에는 다락같은 공간이 있다. 그곳 소파에 기대앉으면 집안의 소리가 들려온다. 비가 오는 날 지붕 창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운치를 더한다.

계단은 스킵플로어로 꾸몄다. 집을 한 층씩 쌓아올리지 않고 반 층씩 높여 설계하는 방식이다. 한 소장은 “계단이 많으면 아무래도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꼭대기까지 집 전체를 쓰게 하려고 이런 방식을 썼다”고 했다. 대지가 뒤쪽으로 갈수록 올라간 것도 고려했다.

안방의 코너창(왼쪽 위), 안방(오른쪽 위) 옥상 입구의 열린 다락(오른쪽 아래), 주방에서 본 거실(왼쪽 아래)./사진= 노경 작가


옥상은 외부의 시선이 차단되도록 했다. 고양이들이 드나들 수 있게 작은 통로를 냈다./사진= 노경 작가


-이 집에 대해 자랑을 한다면.
“낭비되는 공간이 없어요. 중의적으로 쓰입니다. 현관·마당·주차장이 하나로 묶이고 수돗가 겸 계단이죠. 옥상에서는 사방의 시선이 차단돼 있어 파티도 열수 있어요. 구조설계를 할 때 A,B동을 세우고 건물 사이는 계단으로 잇는 구조에요. 벽 안쪽으로 수납 공간을 많이 만들었어요.”

-화장실이 하나인데.
“화장실은 하나인데 샤워실, 세면대, 변기를 나눠 동시에 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화장실에도 테라스가 있어요. 계단을 올라왔을 때 공간을 뒀죠. 마음의 여유를 찾도록 한 것이죠. 계단 앞쪽까지 벽이 있으면 답답하겠죠. 테라스는 거실, 큰방, 작은방에도 있어요.

-작은 집은 외관이 화려한 경우가 많은데.
“독특하게 디자인도 해봤는데 근거가 없었어요. 신축 전의 집이 붉은 벽돌집이어서 거기서 모티브를 가져왔어요. 그래서 동네 풍경과 잘 어울려요. 외벽도 비싼 벽돌을 쓰지 않았어요. 코너창도 보통 유리에요. 요란하지 않으면서 기본을 지켰습니다. 벽면에 하얗게 칠하면 튀겠지만 그런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왼쪽부터 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소장의 커리커쳐./푸하하하 프렌즈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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