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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의 저주…서울 한복판 폐가 5000채

뉴스 장상진 기자
입력 2017.01.24 19:13 수정 2017.01.25 09:02
사업성 있던 뉴타운도 올스톱 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 줄지어 있는 폐가들 앞을 한 남자가 걸어 올라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뉴타운 지역 내에는 폐가 약 5000여채가 방치돼 있다. /주완중 기자


서울 도심의 이태원에서 남쪽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내려갔다. 비틀어진 담쟁이덩굴과 쓰레기로 가득 뒤덮인 기와·슬레이트 지붕집 수백 채가 한꺼번에 나타났다. 깨진 담장 너머로 본드와 비닐봉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빈 갈색 약병들이 뒹군다. 굳게 닫힌 문틈과 우편함들엔 각종 세금·공과금 독촉장이 수북하게 꽂혀 있다. 어떤 집은 대문이 밖에서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겨 있는데도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계세요”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다. 인근 주민 김희준(74·정육점 운영)씨는 “빈집에 숨어 사는 불법 체류자이거나, 노숙자일 것”이라며 “빈집에서 시신도 발견되곤 한다”고 했다. 마을 뒤편으로 한강과 강남이 보인다.

이곳은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된 한남3구역이다. ‘서울의 중심’이란 상징성으로 시장(市長)이 바뀔 때마다 개발 계획 수정·변경이 거듭됐다. 그 사이 투기 세력이 들어왔고, 사들인 집을 방치했다. 개축(改築)도 못 하는 상태로 15년이 흐르자 원주민 중에서도 여유가 있는 이들은 집을 버려두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동네는 폐가촌(廢家村)이 됐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지역 내에는 4886가구가 길게는 15년째 폐가로 방치돼 있다. 뉴타운 정책은 이명박 시장 시절이던 2002년 ‘지역 균형 발전’을 내걸고 처음 도입됐지만, 그간 지정된 사업구역 네 곳 중 한 곳이 삽 한번 못 뜨고 해제됐다. 완료된 곳은 단 16.5%. 정책은 사업 확대(오세훈 시장)→경기 위축→출구전략(박원순 시장)의 과정을 거치며 파행했다.

◇집 없어 난리인데… 범죄 온상된 폐가 5000가구

16일 해 질 무렵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21층 높이로 솟은 D 아파트, 그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자 가로등이 거의 없는 ‘컴컴한 세상’이 펼쳐졌다. 장위3구역이다. 골목길 양쪽에 늘어선 단독주택과 빌라(다세대주택)는 4~5채 중 1채꼴로만 불이 켜져 있었다. 불 꺼진 집들은 깨진 대형 화분이나 손수레 등으로 대문이 막혀 있었고, 그 앞에는 가전제품과 소파 등 쓰레기가 수북했다. 간혹 골목을 다니는 사람들은 몇 걸음 걷다가 흘끔 뒤를 돌아보곤 했다.

장위3구역은 2005년 뉴타운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조합 설립도 못 했다. 한 중견 건설사가 지역 면적의 30%가량을 매입하자, 나머지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10년이 지났다. 학원을 마친 미취학 자녀 3명을 데리고 귀가하던 주민 정모(36)씨는 “밤 9시가 넘으면 어른도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며 “벌써 십년 가까이 이 모양이고, 언제 해결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뉴타운이 폐가촌으로 변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뉴타운이 지정된 지역에 외지 투자자가 몰려들어 1차 ‘손바뀜’이 일어난다. 이런 투자자는 사들인 집에 적극적으로 세입자를 구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주거 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이어서 임대료는 낮은데, 막상 집을 팔 때에는 세입자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방치된 집이 하나 둘 늘면서 주거 환경은 더 나빠진다. 원주민도 집을 번듯하게 고치기 어렵다. 뉴타운 내에서는 개축도 법으로 제약을 받는다. 이렇게 시간이 가면서 낡은 빈집이 확산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의 주택 보급률이 100%에 못 미치는데, 5000가구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 손실”이라고 했다. 범죄 온상화는 또 다른 문제다. 흉악범 김길태는 폐가에서 여중생을 성폭행·살해했고, 폐가를 옮겨다니며 수사망을 피했다. 탈주범 이대우도 폐가에서 20일 이상 숨어 지냈다. 작년 2월에는 경찰 수색 인력 1800여명이 서울시내 공·폐가를 일제히 뒤진 결과, 단 3시간 만에 지명수배자 4명을 붙잡기도 했다.

◇정책실패·투기세력·경기불황 뒤섞여 폐가촌 양산

뉴타운의 실패는 ‘과잉 지정’에서 출발한다. 2002~2007년 뉴타운으로 지정된 면적의 합계는 2591만㎡. 서울 전체 면적의 4%를 넘고, 그 직전 30년간 서울에서 주택 재정비 사업이 이뤄진 면적(1010만㎡)의 2.5배가 넘는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김현아 의원(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타당성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 정도로 애초에 소화가 불가능한 물량이었다”고 했다.

투기세력은 아파트 분양권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큰 땅을 잘게 나누는 투기세력의 ‘지분 쪼개기’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분 쪼개기로 조합원이 늘어난 만큼 일반 분양분이 줄고, 조합원 부담금은 늘어 사업 추진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택 경기가 침체되면서 부담금 부담은 더 커졌다.

박원순 시장의 ‘출구 전략’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왔다. 그는 취임 직후 ‘실태 조사’를 위해 조례를 만들고 사업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한남뉴타운, 장위뉴타운 등 가능성 있던 일부 지역마저 얼어붙었다. 이 지역 조합원 상당수는 “박 시장만 아니어도 벌써 입주했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법·제도의 개편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우선은 CCTV 설치 등을 통해 해당 지역 치안부터 확보해야 한다”며 “이어 폐가를 장기간 방치하는 집주인에게는 과태료를 물리고, 기부채납 제도도 개별 지역 사정에 맞게 개정하는 등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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