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신축 잘못하면 땅값 증발...수리는 돈벌죠"

뉴스 최락선 기자
입력 2017.01.11 04:30

[수리수리 집수리] “신축은 맥락이 없다”는 김재관 대표

“집수리를 한다고 하면 딱하게 여기더라고요. 일감이 그렇게 없냐고 물어요. 저는 다르거든요. 종이 위에 짓는 집은 재미가 없어요. 집을 통째로 알게 되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데요. 쪼그리고 앉아서 일하는 게 좋습니다.(하하)”

김재관 무회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낡은 집 수리(修理)를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다. 이전에는 신축 설계를 했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강정교회(199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 경기 고양시 도내동 풀향기교회(2010년 경기도건축상 수상) 등 전국 교회 20여곳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집수리 건축가’로 방향을 틀었다.

김재관 무회건축사사무소 대표./사진=건축가 황두진


■“집수리는 추억을 이어줘”

조선일보 부동산 콘텐츠 플랫폼 땅집고(realty.chosun.com)가 김 대표를 만나 집수리에 관한 그의 철학과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대표는 “재건축, 재개발을 하려면 집이 빨리 낡아야 했고, 낡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며 “그래서 추워도 이불덮고 참고 살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투자 측면의 집에서 거주의 질을 따지는 시대로 이동하면서 집수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집수리를 전문으로 하게 된 이유는.
“편곡의 재미에 비유하고 싶어요. 원곡을 고치는 재미가 있어요. 저는 모든 낡은 집들이 흥미로워요. 낡았기 때문에 옛날 집에서 오는 이야기, 오래된 집에서만 느껴지는 풍경, 어두운 빛들. 삶을 살았던 흔적들. 보물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어요. 흠집난 것을 좋아해요. 옛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신축은 매력이 없나요.
“신축은 집의 맥락이 없어요. 나는 히스토리가 있는 집이 좋아요. 연속적이고 단절되지 않은 상황이요. 낡은 집은 원전(原典)이 있어요. 그래야 저는 감각이 살아나고 상상력이 발동되거든요. 그 집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신축하면 다 사라지게 되잖아요.”

-히스토리가 있는 집이라면.
“낡고 부실해진 집인데 가족의 추억이 숨쉬고 있다면 쉽게 허물 수 있을까요. 과거부터 시간이 이어지는 집이라면 말이죠. 그럴 때 고쳐쓰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어요. ”

김재관 대표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3층짜리 다가구 주택을 매입해 고쳐서 산다. 1층은 아들내외가 살다 나가 비어있다. 2층은 사무실로 쓰고 3층에는 김 대표 부부가 산다. 대부분 자재는 소나무 원목을 썼고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 파이프와 철 발판을 가져다가 썼다. /사진=오종찬 기자


■“집수리는 결국 삶을 바꾸는 것”

김 대표는 설계 뿐아니라 집수리 시공도 직접한다. 뼈대(구조)는 물론 사람의 핏줄과 신경계통인 설비며 전기배관 공사까지 직접한다. 벽돌을 쌓고 용접도 한다. 훈련의 개념이다. 그걸 다 알아야 집을 제대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지론이다.

-집수리의 핵심은 뭔가요.
“집을 시대의 쓰임새에 맞게 바꾸는 것이 집수리에요. 집의 목적이 달라졌어요. 도시에 주택을 한꺼번에 짓던 시절에는 방이 중심이었어요. 거실같은 공유 공간은 작았어요. 요새는 가족들의 공유 공간이 강조되죠. ”

김 대표가 정의하는 집수리는 ‘공간의 수리’ 혹은 ‘공간의 재편’을 일컫는다. 방수, 단열 등 기능 보강은 어쩌면 부수적인 문제다. 김 대표는 “벽을 뜯고 집의 크기와 형태를 바꾸면 삶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며 “형식은 집을 바꾸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삶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수리가 삶의 수리라는 뜻이다.

-활용 공간을 넓히나요.
“죽은 공간을 살리거나 기존 공간을 넓히는 산술적인 효율성도 있지요. 더 중요한 것은 거주자의 정서와 부합되는 공간을 찾고, 쓸모있게 만들어 내는 겁니다.”

-신축보다 좋은 점은.
“집을 부수지 않으니까 뼈대를 다시 쓸 수 있어요. 신축비용의 3분의 1은 아끼는 거죠. 옛날엔 엉터리 측량이 많았어요. 집의 경계가 불분명한거죠. 그런데 신축하면 새로 측량하게 되고 이때 원래 땅보다 줄어드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땐 집수리가 낫죠. 신축하면 예전보다 강화된 건축법이 적용됩니다. 도로에서 뒤로 물려서 집을 지으면 땅값이 증발하는 거죠.”

이 집은 마당이 인근 주택에서 다 보이는 상황. 그렇다고 담을 쌓으면 스스로 갇히는 셈이다. 홀딩도어를 활용해 평소에는 오픈돼 있지만 필요할 때 닫히는 가변적 마당을 만들었다./무회건축사사무소 제공


■“사실 신축이 수리보다 쉽죠”

-집을 고칠 때 어려움이 있다면.
“대개 집수리 기록이 없어요. 구조와 관련된 것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중요한 벽인데 이미 부쉈다면 흔적이 안 남거든요. 천장을 뜯어내다가 아찔할 때가 많아요. 저는 나름대로 설계 도면을 그려갑니다. 집의 족보를 만드는 셈이죠”

-그래서 집수리 건축가가 드문건가요.
“건축가가 고생한 티가 안 나죠. 낡은 것과 새 것을 섞어 쓰는데 어디가 낡은 것인지, 새로한 것인지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거든요. 돈을 덜 썼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해요. 노력에 비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요. 건축가 입장에서는 사실 집을 고쳐쓰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쉽거든요.”

온전한 대문 기둥은 놔두고 제기능을 못 하는 철문을 바꿨다. 쓸모가 있다면 재활용하는 것이 집수리의 기본이다./무회건축가사무소 제공


-단독주택 수리시 주의점은.
“옆이나 위로 증측하는데 집공간이 늘어나면 의무도 커져요. 주차장을 확보해야든지, 정화조 용량이 커진다든지. 이런 법적 의무를 부담할 여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요.”

-앞으로 계획은.
“마을이나 동네를 수리하고 싶어요. 방, 집, 골목, 마을로 수리의 개념을 확장하는 거죠. 서울 도봉구 창동과 쌍문동에 집이 낡아서 슬럼화가 진행되는 곳이 있거든요. 최근에 무덤 수리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가톨릭 신부님들의 공동 묘지인데 죽음과 삶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그동안 집만 고쳤는데 상가, 다중시설, 주택 신축 작업도 예정돼 있어요. 기대가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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