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욕심 과했던 한명회, 결국 땅이 내쳤다"

뉴스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CEO
입력 2017.01.08 03:30

[남자의 집짓기] ⑥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

전원주택 터를 장만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기준면적으로 가장 많이 얘기하는 집터의 규모는 500㎡(약 150평)이다. 이 정도 규모는 있어야 집을 제대로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는 이 정도 집터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2012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세대당 소유 토지는 절반인 51%가 100㎡(약 30평) 미만이다. 아파트 세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세대당 토지면적이 작을 수밖에 없는 점도 있지만, 단독주택도 도시지역은 100~165㎡(약 30~50평)가 대부분이다. 택지개발지구의 단독택지도 230~265㎡(약 70~80평)로 규격화된지 오래다.

도시에서 시골로 집터를 옮긴다고 갑자기 터를 늘려 잡는 것은 지나친 물욕이다. 무엇보다 관리의 한계를 넘어선다. 땅에 대한 욕심을 줄이는 것이 집터 마련의 첫걸음이다.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

넓은 마당을 가진 전원주택이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한 가족이 집터로 가꿀 수 있는 땅의 크기는 제한적이다. 적정선에서 땅에 대한 욕심을 줄여야 한다.


■“땅은 사내의 전부이자 영혼”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는 그 해답이 땅의 크기가 아니라는 점을 전한다. 소작농인 보흠은 땅값 1000루블을 내고 아침 해뜨기 전에 출발해 다섯 군데 표시를 하고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면, 그 다섯 군데를 연결한 안쪽 땅을 준다는 마을을 찾아간다. 아침 일찍 출발한 보흠은 사방에 널린 비옥한 땅을 보고 욕심을 부리다가 너무 멀리까지 가게 된다. 해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 뛴 덕분에 해가 떨어지기 직전 겨우 도착하지만 기진한 나머지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둔다. 결국 죽음의 대가로 보흠은 많은 땅을 소유하게 되지만 세상을 떠난 그에게 필요한 땅은 자신의 관을 묻을 한뼘의 땅이었다.

영화 '파앤드어웨이'에서 등장하는 땅 따먹기 경주 장면.


이런 땅따먹기 게임은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일이다. 무대는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1992년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파앤드어웨이(Far & Away)’라는 영화가 있다. 시대적 배경은 1892년, 영화를 만들기 딱 100년 전 얘기다. 가난한 조국 아일랜드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조셉과 섀넌은 갖은 고생 끝에 오클라호마로 건너와 ‘체로키 경주(Cherokee Race)’에 도전하며 마지막 승부를 건다. 미국 서부개척시대 노동력을 유입시키기 위해 도입했던 이 게임은, 160에이커(약 16만평)마다 꽂혀 있는 깃발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에게 그 땅을 주는 것이었다. 보흠의 경우와 달랐던 점은 차지할 수 있는 땅의 한계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것. 평생을 소작농으로 살아 한 뼘의 땅도 갖지 못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조셉에게 ‘땅은 사내의 전부이자 영혼’이었다. 사력을 다한 경주 끝에 조셉이 땅을 차지하는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경주 최부자와 구례 운조루

‘땅이 영혼’인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름이 없지만, 우리 역사에는 이 물욕의 한계를 규율하는 미담이 전해진다. 10대 만석꾼의 전설을 남긴 경주 최부자의 지혜가 바로 그것이다. ‘100리 근방에 굶어죽는 이가 없게 하라’고 했던 이 집안의 가법(家法)은 사실 치밀하게 짜여진 경제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만석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쌓이는 부를 자꾸 나눠줘야 한다. 최부자는 소작인을 자영농으로 독립시키는 방법으로 부를 쪼개 주었다. 그렇게 되면 소작인들은 자영농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더욱 열심히 하게 되고 1만석의 부는 더욱 튼실해진다.

물욕에 대한 자제와 나눔의 미덕을 전해주는 전남 구례 운조루와 '타인능해' 뒤주.


전남 구례지방에 가면 운조루(雲鳥樓)라는 고택이 있다. 이 집 문간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쓰인 쌀 두 말 크기의 특별한 뒤주가 있다. 아무나 열 수 있으니 필요한 만큼 쌀을 퍼가라는 뜻이다. 이렇게 덕을 쌓은 덕분에 빨치산의 해방구로 지주들이 요절을 당하던 시절에도 이 집은 손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땅에 대한 물욕을 적정선에서 자제하고, 나눔의 미학을 실천했던 두 가문의 미담이 주는 교훈은 전원주택지를 장만할 때도 새겨야 할 계율이다.

■낙향 코스프레하던 한명회의 말로

그러나 부촌 1번지로 꼽히는 서울 압구정동에는 반대의 내력이 전한다. 영화 ‘관상’을 통해서 유명해진 칠삭둥이 정승 한명회의 얘기다. 조선시대에는 관직에서 물러나면 낙향하는 것을 선비의 도리로 알고 그렇게 실천한 선비가 많았다. 전국에 산재한 서원이나 정자는 그런 선비들이 낙향해 세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너무 멀리 낙향해 버리면 권력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는데 있었다. 수양대군의 책사였던 꾀돌이 한명회는 잔머리를 굴렸다. 낙향의 기준은 일단 한강(漢江)을 건너야 했다. 한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않으면서 한강 건너 자리잡은 곳이 바로 지금의 압구정동이었다. 한명회는 이곳에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낙향 코스프레를 했다.

영화 ‘관상’에서 김내경이 예언한 대로 한명회는 죽은 뒤 무덤에서 시신이 꺼내어져 다시 목이 잘리는 부관참시의 형을 받았다. 살아서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힌 업보로 죽어서도 편하지 않았던 칠삭둥이의 말로를 보면서 땅이 사람을 내치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비석으로만 남아 있는 한명회의 압구정터(왼쪽)와 황희 정승의 반구정.


■“땅이 사람을 내칠 수 있다”

반면, 똑같이 갈매기를 벗하며 지내고자 강변에 정자를 지었지만 지금까지도 건물과 뜻이 그대로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세종조의 명상(名相)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黃喜) 정승이 18년의 영상직을 사임하고, 87세에 파주 임진강변에 내려와 89세의 천수를 다할 때까지 이름 그대로 갈매기를 벗하며 노년을 보낸 반구정(伴鷗亭)이다. 한명회의 압구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황희 정승의 반구정은 아직도 후손들에게 전해져 길이 추앙받고 있다.

능내리에는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이 있다.‘여(與)’는 ‘겨울 냇물을 건너듯하다’는 뜻이고, ‘유(猶)’란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다’의 뜻으로 조심조심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이다. 평생을 거침없이 살았던 한명회는 죽어서도 일신을 편히 누이지 못했고, 매사 삼가고 낮추어 살았던 정약용은 만고의 사표가 되어 우러러지고 있다. 누가 진정으로 그 땅의 주인이 되었는가.

전원주택지는 최소 150평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 내가 그 땅의 주인인가에 대한 성찰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땅이 사람을 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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