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미국의 세계 제패를 이끈 불가사의 구조물

뉴스 박원호 기술사
입력 2017.01.01 02:30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⑫‘미국의 자부심’ 연방고속도로

도로는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도로야말로 목적지로 향하는 최단 거리의 길로서 자동차와 함께 이동의 자유를 제공한다. 진화를 거듭한 도로의 완결판인 고속도로는 고속 이동의 자유를 준다.

지구상에서 고속도로가 가장 발달된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보이지 못했던 미국이 20세기 중반 이후 선진국 대열에 고속 진입할 수 있었던 데는 연방고속도로의 공이 가장 컸다. 총 길이가 4만7182 마일(7만5932㎞)로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였다. 그래서 연방고속도로는 미국인의 자부심으로 불린다. 미국 토목학회(ASCE)는 1994년 금문교·파나마운하·후버댐 등과 함께 ‘미국의 7대 불가사의(7 wonders of the US)’ 중 하나로 선정했다.

미국 연방고속도로는 2000년대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로 미국의 세계 제패를 이끈 일등 공신이다.


■아우토반에 감탄한 아이젠하워가 추진

연방고속도로 건설 배경은 1919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 세계 대전 종전(終戰)과 함께 미국 군 당국은 국방력 대비를 위해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대륙 횡단을 전시 작전 형태로 감행했다. 장장 3250마일(5200㎞)을 주파하는 데 무려 62일이 걸렸다.

당시 이 작전에 참여했던 육군 중령 아이젠하워는 미국 전역의 낙후된 도로를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후 2차 대전에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참여해 독일 진격 작전을 이끄는 과정에서 독일의 자랑인 아우토반(Autobahn)에 경탄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1953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최우선 목표로 연방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 연방고속도로의 정식 명칭은 ‘아이젠하워 주간(洲間) 및 국방 고속도로 시스템(Dwight Eisenhower National System of Interstate and Defense Highways)’이다.

연방고속도로를 처음 추진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당초 연방고속도로가 지역간 물자 유통과 전쟁 발발시 신속한 군부대 이동에 큰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국토의 균형 발전, 인적·물적 교류의 활성화, 사업 기회의 창출, 고용 기회의 확대, 관광·레저산업의 활성화 등이 일어났다. 일례로 맥도날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체인, 월마트, 세븐일레븐 등이 고속도로를 따라 번져갔다.

미국은 자동차 보유 2억대를 돌파했다. 자동차 총 주행의 70%는 고속도로 위에서 이루어진다. 고대 로마가 거미줄 같은 도로로 세상을 제패했듯이, 미국 역시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망으로 사막이나 다름없는 내륙 오지를 인간의 대지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본토 48개 주를 물자와 정보가 흐르는 거대한 단일 네트워크로 만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제일의 강대국, 이름하여 팍스 아메리카(Pax-America)로 떠오를 수 있었다.

1958년 9월 4일 미국 위스콘신주 위키쇼 지역의 I-94 연방고속도로 첫번째 구간의 완성을 축하하는 리본 커팅식.


■생태 환경 최대한 살린 개발

연방고속도로 건설은1956년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Interstate Highway) 시스템 건설을 위한 법’에 서명함으로서 본토 48개 주와 수도 워싱턴 DC를 잇는 공사가 시작됐다. 건설 비용은 휘발유 가격에 세금을 거두는 방식으로 90%를 충당하고, 나머지 10%는 주정부가 지원했다.

연방고속도로의 번호 체계는 1957년 미국도로교통협회(AASHTO)에 의해 수립됐다. 미 대륙 내에서 주와 주를 연결하는 도로에는 원칙적으로 100자리 이하로 된 두자리 숫자로 표기한다. 기본적인 골격은 동서 고속도로는 짝수로, 남북 고속도로는 홀수다. 예컨대 I-90 도로는 동부 보스턴과 서부 시애틀을 잇는 총 길이 4842㎞로 2005년에야 최종 준공됐다.

연방고속도로 건설에는 다양한 건설 기술이 적용됐다. 장대(長大) 교량, 장대 터널, 프리캐스트(PC) 공법, 공기 연행 콘크리트(Air-entrained concrete) 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거나 훌륭한 기술적 성취가 몇가지 있다.

산을 'V'자로 깎아 생긴 절벽의 지층을 최대한 보존한 I-68 연방고속도로의 시델링 힐 구간.


메릴랜드주 서부에 있는 시델링 힐(Sideling Hill) 고속도로가 대표적이다. 시델링 힐은 수백 년 동안 차량 통행에 큰 장애물이었다. 험한 고갯길이었던 이곳을 곡선의 고속도로로 건설해 종 방향으로 지나는 I-79 도로와 접속시켜야만 했기에 산을 ‘V’자 형태로 절개하기로 했다. 급경사를 피하기 위해 해발 536m의 산을 116m 깊이로 깎아냈다. 공사 도중 기존 도로는 통행을 유지해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절개 작업이 완료되자 지층이 노출됐는데 지층별 색깔이 화려하게 드러났다. 이 지층은 3억 5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존 가치가 높아 당국은 지층 중앙으로 산책로를 만들었다. 그 후 이곳은 I-68 도로의 최대 명소가 됐다.

깊은 계곡을 뚫어 도로를 낼 경우, 생태 통로는 필수다. 지금이야 당연한 준수 사항이지만 I-70 연방고속도로에 있는 글렌우드계곡 교량은 세계 최초의 친환경 다리로 꼽힌다. 글렌우드계곡에는 40여 개의 교량과 도수(導水) 관로를 포함하면서 아름다운 경치도 보존할 수 있도록 설계해 연방고속도로 건설 역사에서 기념비적 프로젝트로 꼽힌다.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고 로드 킬 예방을 위한 생태통로를 처음 설치한 글렌우드계곡 교량.


■“국가의 발전 속도는 도로가 좌우”

일주일 내내 고속버스로 이동하는 미국 여행을 상상해 보라. 하루 1000㎞를 주파하는 강행군이지만 이틀 정도 지나면 익숙해진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끝간데 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계속되는 무한 질주. 미국이야말로 이동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된 나라다.

연방고속도로의 안전율 역시 세계 최고다. 고속도로 사망률이 주행거리 1억 6000㎞당 1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도로 설계가 잘 됐다는 반증이다. 연방고속도로의 진가는 최근 재난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당시 2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대피할 수 있었던 것은 연방고속도로 덕분이었다.

문명이란 속도의 결과물이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속도, 오지를 향해 가는 개척의 속도, 불의의 재난에 대피하는 속도, 나아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속도까지. 실제로 한 나라의 평균 속도는 그 나라의 도로 사정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야흐로 광속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이 시대, 미국은 연방고속도로의 확장에 더욱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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