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벽도, 문도 없고 책장만 100m…책을 모시고 사는 집

뉴스 이재은 기자
입력 2016.12.28 04:00

[아름다운 집] 책이 대접받는 ‘흐르는 집’

경기도 파주에 지은 ‘흐르는 집’에는 벽이 없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주방과 식당, 거실 겸 서재를 거쳐 침실에 도달할 때까지 내부에 공간을 분리하는 벽이나 문을 찾아볼 수 없다.

벽이 없는 대신 바닥의 단차(높낮이)와 수납장을 통해 공간이 구분된다. 50평 남짓한 이 집은 단층이다. 하지만 집 내부 바닥의 높낮이가 조금씩 다르다. 현관에서 몇 계단 내려가면 거실과 주방이 나타난다. 또 몇 걸음 내려가면 서재와 작업실이 등장한다.

50대 방송작가 두명은 "책이 대우받는 집을 만들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내부에 총 100m 길이의 책장을 설치한 경기도 파주의 단독주택 '흐르는 집. / 준아키텍츠 제공


집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서재에는 수천권의 책이 꽂혀있다. 100m 길이의 벽면 책장이 위치한 서재는 ‘흐르는 집’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흐르는 집'의 주인공은 100m 길이의 벽면 책장이 위치한 서재 겸 거실이다. 책장은 무거워보이지 않도록 위아래로 창을 내서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김현석 건축가는 "책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꽂혀있으면 공간이 막혀 보이는 데다가 맨 아래쪽에 꽂혀있는 책은 꺼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 준아키텍츠 제공


'흐르는 집'은 현관에서 몇 개단 내려가면 거실과 주방이 나타나고 또 몇 걸음 내려가면 서재와 작업실이 등장한다. 얼핏보면 집 전체가 완전히 열려있다. / 준아키텍츠 제공


땅집고(realty.chosun.com)가 이 집을 설계한 김현석(39) 준아키텍츠 대표를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김현석 대표는 지난해 50대 커플로부터 ‘집을 설계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애서가(愛書家)인 방송작가 커플은 수천권의 책을 수납할 방법을 찾지 못해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30년 넘게 아파트에 살고 두 번의 단독주택 생활을 거친 이들은 “방 하나를 통째로 서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거실에 책을 두기도 했지만 늘 물건이 많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면서 “책을 제대로 대우해줄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파주 '흐르는 집'의 중정. 외부에서는 중정이 보이지 않는다. / 준아키텍츠 제공


김현석 대표가 설계한 집은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흰 주택이다. 집 한면에는 중정(中庭·집 가운데에 있는 마당)이 자리잡고 있다. 중정과 맞붙은 면은 전면이 유리창이고 나머지 3면도 벽 윗부분의 3분의 1 정도가 유리창일 정도로 창문이 많다. 김 대표는 단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중 유리를 활용하고, 벽에 두꺼운 단열재를 넣었다.

김 대표는 “많은 양의 책을 수납할 수 있으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분들인데, 집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열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현석 준아키텍츠 대표는 2016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 준아키텍츠 제공


―‘흐르는 집’을 설계할 때 어떤 부분에 신경썼나.
“글을 쓰는 분들이라 책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원했습니다. 두 분이 보유하고 있는 책을 일렬로 세워보니 무려 75.6m였어요. 100m 길이의 벽면 책장이 들어갈 공간이 필요했죠. 수천권의 책을 수납하면서도 공간이 넓어보이려면 일반적인 집과는 구조가 달라야 합니다. 책이 들어가는 서재를 중심으로 내부를 구성했어요. 책장이 무거워보이지 않도록 벽에 책장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로 창을 내서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줬어요.

책을 꽂기 전 파주 '흐르는 집'의 서재 모습. / 준아키텍츠 제공


두 분 모두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 작가여서 집에서 일을 합니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집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것 같은 공간,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없애고 싶었어요. 크게 ‘외부 같은 외부’, ‘내부 같은 외부’, ‘외부 같은 내부’, ‘내부 같은 내부’ 등 4개 공간을 구성했어요. 4개 공간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다는 게 ‘흐르는 집’의 특징입니다.”

파주 '흐르는 집'의 현관 포치. / 준아키텍츠 제공

―벽이나 문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하루종일 집에 있는 분들이어서 벽을 세우면 공간이 답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분도 밝고 탁 트인 공간을 원한다고 해서 화장실에만 유리로 된 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공간이 마냥 열려있기만 하면 단조롭죠. 시선(視線)이나 빛을 활용해서 다채로운 공간감을 주고 싶었어요. 마침 집을 세우는 땅이 애매하게 경사진 곳이어서 바닥 높이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창문 위치는 그대로인데 바닥 높이가 달라지면 집안에서 돌아다니는 사람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수납장으로 둘러싸인 작은방. 김현석 건축가는 "작은방은 '흐르는 집'에서 '내부 같은 내부' 공간"이라고 말했다. / 준아키텍츠 제공

―어떻게 달라지죠.
“침실에서 창 밖을 보면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게 보입니다. 서재의 경우 벽면 책장이 바깥 도로를 가로막고 있어 시선이 위아래 유리창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쪽 창을 통해서는 원경(遠景)의 산이 보이고, 아래쪽 창으로는 밖에서 자라는 풀잎이 보여요. 안팎의 시선도 다릅니다. 밖에서는 벽면 책장이 가리고 있는 몸통은 안 보이고 위아래 창을 통해 집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과 머리만 보입니다. 수납장으로도 동선이나 시선을 제한했습니다. 책을 포함해 수납할 물건이 많았기 때문에 가려야 하는 부분은 수납장으로 가렸습니다.”

파주 흐르는집의 설계도. /준아키텍츠 제공


파주 흐르는집의 야경. /준아키텍츠 제공


김 대표는 지난 6월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단은 김 대표에 대해 “젊은 건축가가 독립해 맞닥뜨리는 저예산이라는 제한 상황을 신선한 건축적 해법과 도전적인 건축으로 전환시켰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가 2014년 설계한 파주 ‘용감한 주택’의 경우 1억5000만원이라는 예산 내로 4개월 만에 완공했다. ‘흐르는 집’의 총 건축비는 2억7000만원이었다.

―앞으로 어떤 건축을 하고 싶나요.
“건축 거장 루이스 칸의 업적을 담아낸 ‘나의 설계자(My Architect)’라는 영화에서 칸의 아들이 저소득층 동네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민들이 건물을 험하게 다뤄 낙서도 많고 수리가 필요한 부분이 눈에 띄어요. 한 건물만 멀쩡했는데, 루이스 칸이 만든 건물이었어요. 주민들이 그 건물만의 분위기와 디자인을 존중해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존중받고 존중할 가치가 있는, 그런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학교 설계에 적극 참여하고 싶습니다. 주택이나 빌딩은 다양해졌는데 학교만 수십년간 그대로에요. 학생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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