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내년이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땅집GO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⑪ 현대 건축 명품 ‘똘레아그바’
스페인 바르셀로나 동쪽에 가우디 건축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현대 건축 명품인 똘레아그바가 2005년 1월에 문을 열었다. 바르셀로나 하면 당연히 가우디가 설계한 이른바 가우디성당(사그라다 파밀리에)을 떠올리게 되지만 동쪽 신도시에 건설된 똘레아그바(Torre Agbar)는 높이가 아닌 21세기형 디자인으로도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건물이 들어서면서 바르셀로나는 새로운 관광 라인을 구축하게 된다. 즉, 똘레아그바를 중심으로 새로운 건축 탐방로(new architecture tour)가 개설된 것이다.
■하루에 40가지 색깔로 변해
이 건물을 설계한 프랑스의 장누벨(Jean Nouvel)은 용암천에서 솟구치는 물기둥을 형상화했다고 하지만 필자 눈에는 엄지손가락에 낀 골무가 연상될 만큼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이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랜드 마크로 각광받는 이유는 물기둥 모양뿐만 아니라 시간대별로 건물의 색상이 변하는 것은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서도 색깔이 변하는 디자인 때문이다. 하루에 40가지 색깔로 변한다고 하니 방문하는 시각과 머무는 시간에 따라 머리에 남아 있는 모습과 색깔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건물의 주인은 우리의 한국수자원공사와 유사한 수자원국이다. 스페인은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다. 강우량이 적고 지하수가 충분하지 못해 해결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담수화를 통해 수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똘레아그바 건물 1층에는 인류가 당면해 있는 물 부족의 심각성과 기근에 시달리는 인류의 처참한 모습이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인류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 물의 98%인 바닷물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를 동영상과 함께 방문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여러 설비를 갖췄다. 즉, 인간의 힘으로 물 한 방울을 얻는 데 어느정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창문만 4500개…코어 빼고 기둥 없어
자연과 인류가 공존하려면 인류가 거주하는 공간의 건설이 자연 환경에 주는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게 기본 개념이다. 건물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중 외피를 썼다. 이중 벽 사이로 태양열로 인해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최상부까지 공기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배출되도록 설계했다.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4500개의 창문을 달았다. 실내 자재에는 포름알데히드, 납, 석면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근무자들이 출퇴근할 때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최대한 이용하도록 주차장 대신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했다. 태양열 에너지를 건물 전체 에너지의 25% 이상이 되도록 했다. 냉방 설비는 불활성 기체를 일체 사용하지 않도록 했고 건물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은 중수 설비를 통해 재생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건물의 각 층을 27개 구역으로 세분화해 온도를 조절하는 냉방 시스템을 갖췄다.
똘레아그바의 규모는 지상 34층, 지하 3층이다. 이 중 실제 사무 공간은 지상 28개 층이다. 28개 층 전부를 수자원국이 사용하며 방문객에게 개방되는 공간은 1층 로비와 지하 1층 정도다. 업무용 공간의 층당 높이는 2.6m이며, 모두 8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된다. 건물의 코어 구조물에 해당되는 기둥 겸 콘크리트 코어 실린더는 건물의 중심이 아닌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 편심(eccentricity·偏心)이 작용하게 배치됐다. 지상 34개 층 전부에 기둥을 없애 활용 공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지역 경제 살리는 랜드마크
똘레아그바의 건물 연면적은 5만500㎡이며, 건물 내피에는 총 5만 9619개의 유리판이 설치됐다. 외피는 콘크리트 패널로 모두 4349개의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실내와 대기 환경을 최대한 접합시키기 위한 디자인이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가까이에서 보면 상당히 높아 보이지만 지상에서 꼭짓점까지 높이는 142m에 불과하다. 건물 전체에는 대기 소통을 위한 창문 4500여 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야간에는 이 창문들이 시간대별 조명 색깔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야간 조명은 40가지의 색상을 변화시킬 만큼 정교해 그 자체가 예술품이다.
똘레아그바는 건설 명품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이 명품 건축물이 시사하는 바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높이가 아니어도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둘째, 종교적 색채 혹은 특정 인물을 지향하지 않으면서도 명품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셋째, 같은 구역 내 건설된 컨벤션센터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지중해 연안 해수욕장과 융합돼 관광객부터 비즈니스맨까지 다양한 계층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었다. 즉, 새로운 건축 명품이 1일 관광로로 이어져 바르셀로나에 관광객이 하루 더 묵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넷째, 재생 에너지 활용 극대화와 에너지 소모 극소화, 무한정인 바닷물을 생명수로 재생산, 사용한 물의 재순환 등 새로운 기술을 동원해 녹색 성장 시대의 대표적인 친환경 건축물로 자리매김하면서 방문객들에게 수자원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산교육장 역할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