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 끝난다
엎친 데 덮친 주택시장
“내년도 이 동네에서 1만 가구가 넘게 입주해야 하는데 비상입니다. 1억~2억원씩 대출받아 아파트 분양받은 손님들이 벌써부터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도 아파트 값이 슬금슬금 내리는데, 금리까지 오르면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대구 달성군 ‘테크노폴리스’에 있는 A중개업소 관계자는 “미국 금리 움직임에 지방 동네 부동산에서 걱정하는 게 좀 황당해 보이지만, 미국 금리 상승은 결국 한국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고 지방 부동산 시장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달성군에선 올해 1만여 가구가 이미 입주했고, 내년에도 1만687가구가 입주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15일(한국 시간) 새벽 기준금리를 0.5~0.75%로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하면서 이미 가격 하락세가 시작된 지방 부동산 시장에서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가계 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금융 당국도 비상이 걸렸다
◇부동산 온기 유지, 가계 부채 관리 ‘줄타기’ 어려워질 것
부동산 시장에선 미국 금리 인상은 ‘예고된 악재(惡材)’ 중 하나였다. 부동산 시장에선 금리 인상 요인이 이미 반영돼 있어 당장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대규모 입주가 시작되는 내년 중반 이후가 문제다. 부동산 리서치 회사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 평균 23만 가구 수준이던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17년과 2018년 각각 36만 가구 수준으로 급증한다.
지방 분양 단지에선 중도금 이자 면제, 후불제 조건을 내세운 경우가 많았다. 입주 때가 되면 중도금이 잔금 대출로 바뀌면서 입주자가 곧바로 이자를 내야 하고, 금리가 오르면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중견 건설사 분양팀 관계자는 “입주 물량이 많은 것도 걱정인데, 금리까지 오르면 고객들이 입주를 집단적으로 거부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분양 시장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이미 청약 제도 강화, 대출 규제까지 강력하게 시행되는 상황이어서 금리가 오르면 소비자 부담도 늘고, 매수 심리도 위축돼 분양 시장 분위기도 식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실물 경제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그나마 내수(內需)를 뒷받침하던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한은, 부동산 경기 위축 감수하고 내년 금리 인상 나설 수도
가계 부채를 관리하는 금융·통화 당국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외 연구 기관들은 미국의 이달 금리 인상이 예견된 상황에서도 “경기 진작을 위해 금리를 더 내릴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행을 압박했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 인상안을 발표하고, 내년 금리 인상 예상 횟수도 2회에서 3회로 상향 조정함에 따라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를 1.25%로 동결한 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 1300조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내년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경우 한국은행이 부동산 시장 위축을 감수하고서라도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해야”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내 금리 인상에 대비한 다양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은 “정부는 금리 인상 수준에 따라 분양 시장과 기존 주택 시장, 전세 시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정교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서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정 혼란 상황이 이어지는 만큼 정부 내에 확실한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부처 간 정책이 엇박자를 내지 않도록 정밀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