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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철(鐵)의 괴물'

뉴스 김윤주 건설산업硏 책임연구원
입력 2016.12.11 04:30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내년이면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조선닷컴의 부동산·인테리어 콘텐츠 플랫폼 땅집GO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⑨‘강철 공룡’ 포스 브리지

세계 최초의 강철 교량으로 불리는 포스레일브리지. 스코틀랜드 포스만을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서쪽 약 14km 지점에 2개의 웅장한 교량이 놓여 있다. 이들은 포스만(灣)을 가로질러 에든버러와 세인트 앤드류를 잇는 철도교와 도로교이다. 철도교는 포스레일브리지(Forth Rail Bridge), 도로교는 포스로드브리지(Forth Road Bridge)로 각각 불린다. 포스레일브리지는 건설 당시에는 강철로 만든 세계에서 가장 긴 철교였다. 이 두 교량은 신구(新舊) 조화를 이루면서 지금까지 스코틀랜드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19세기 토목 기술의 상징

캐나다의 퀘벡교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긴 캔틸레버 트러스(cantilever truss) 구조의 포스레일브리지. 이 교량은 1883년 착공해 1890년 3월 4일 완공됐다. 이후 ‘강철(鋼鐵) 공룡’으로 불리며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함께 19세기를 대표하는 철 구조물이자 영국 토목 기술의 상징으로 불렸다.

이 교량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타워브리지를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대명사였던 대영제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구조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국의 유명한 예술가였던 윌리엄 모리스는 다리 모습을 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철의 괴물”이라고 혹평했다.

19세기 토목 기술의 상징으로 꼽히는 포스브리지 위치(풍선모양으로 표시된 곳). /구글 지도


포스레일브리지는 동시대 일반적인 교량 경간의 4배(521m)에 달하고 전체 길이도 2.5km(진입로 포함)에 이르는 거대 교량이다. 세계 최초로 강철이 주요 자재로 사용됐고 캔틸레버식 트러스 구조를 적용했다.

1800년대 들어 포스만의 교량 건설이 제안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논의 끝에 1865년 의회에서 건설을 추진했다. 처음에는 바우치(Sir Tomas Bouch)에게 설계가 맡겨졌다가 새로운 설계안이 채택됐다. 하지만 바우치가 설계한 티교가 1879년 붕괴되면서 설계자가 교체됐다. 당시 철도청의 베테랑 고문이던 존 파울러(Sir John Fowler)와 철도기사 벤저민 베이커(Sir Benjamin Baker)였다. 그 중 베이커는 제철 지식이 풍부했다.

이들이 제출한 설계안에는 교량 건설에 사용되지 않던 구조와 재료가 포함돼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교량 건설에는 주로 주철(鑄鐵)이 이용됐고 강철이 사용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 안전성 검증도 이뤄지지 않아 강철을 쓰기까지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당시 베이커는 주경간이 긴 포스철교에는 강철이 적합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통해 강철이 주철보다 강도가 50% 이상 더 높다는 것을 검증했다.

포스레일브리지를 설계했던 베이커가 사람 모델을 이용해 캔틸레버 트러스 구조의 원리를 설명하는 모습이 담긴 엽서.


포스레일브리지에는 캔틸레버 트러스 방식이 적용됐고 ‘홀바인의 앙버팀’이라는 구조가 채택됐다. ‘홀바인의 앙버팀’은 독일 화가 홀바인의 그림에서 남성상이 언제나 가랑이를 벌리고 앙버티고 있는 자세에서 유래했다. 교각이 아래쪽으로 갈수록 넓어져 안정감 있는 구조였지만 당시 흔히 보던 구조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미학적 측면에서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티교 붕괴 이후 안정성 확보가 강조되면서 결국 채택됐다. 실제 건설에 사용된 강철은 설계안(4만2000t)보다 21% 증가한 5만1000t에 달했다. 당시 건설된 철교 중 열차가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대교가 됐다.

건설 당시 500m가 넘는 주경간, 새로운 구조와 자재, 심한 조류 등 예측못한 현장 작업 환경으로 시공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하지만 캔틸레버 방식 채용으로 작업 공간이 확보되면서 일부 자재의 현장 제작이나 외부 지지대 설치가 필요없어져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총 건설비는 320만 파운드였고, 공사 도중 57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포스레일브리지와 함께 신구 조화를 이루고 있는 포스로드브리지. 1964년 개통한 4차로 현수교다.


■‘하늘의 고속도로’로 불리는 도로교

포스레일브리지 서쪽의 포스로드브리지는 철도교 개통 약 70여년이 흐른 1964년 9월 4일 준공했다. 전체 길이 2517m, 3개 경간을 갖춘 4차로 현수교다. 개통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현수교로 ‘하늘의 고속도로(Highway in the Sky)’로 불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최첨단 기술인 CCTV를 설치해 24시간 감시시스템을 갖췄다. 이 교량이 개통되면서 800년간 운행하던 정기 운항선이 끊겨 많은 사공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포스로드브리지는 주경간 1006m, 북측 및 남측 경간 408m, 주탑 높이 156m, 북쪽과 남쪽에 있는 257m와 438m의 고가교로 구성됐다. 3만 9000t의 강재와 1만 5000㎥의 콘크리트가 사용됐다. 교량 주케이블은 직경 603mm로 각각 1만 3800t의 교량 하중을 앵커리지에 전달한다.

이 교량은 개통 첫해 차량 250만대가 통행했고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포스만에 두 교량이 없었다면 영국인들은 먼거리를 돌아가야 한다. 포스레일브리지의 경우 완공 이후 현재까지 하루 철도 운행 횟수가 180~200회에 이른다. 이렇듯 두 교량은 100년 이상 영국인들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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