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신탁 방식’ 재건축 추진을 결의했다. 서울에 있는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 가운데 처음이다. 최대한 빨리 주민 동의서를 모아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하겠다는 계산이지만, 시일이 촉박해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8년간 재건축 지지부진… 1월 말까지 주민 75% 동의 모아야
여의도 시범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지난달 19일 총회를 열고 한국자산신탁을 재건축 예비신탁업체로 선정했다. 전체 소유주 1584명 중 651명이 총회에 참석해 참석자의 96.3%(627명)가 찬성했다.
신탁 재건축이란 전체 소유주의 4분의 3 이상의 동의해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하면, 신탁사가 단독 시행자로서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모든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일반 재건축 사업과 달리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설립하지 않아도 돼 기존 방식보다 1~3년 정도 사업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문제는 전체 주민 75%의 동의를 얻는 것이다. 1790가구의 시범아파트는 지난 2008년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재건축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8년 동안 소유자의 75% 동의를 모으지 못해 재건축조합을 만들지 못했다. 부동산업계가 신탁 방식 재건축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비신탁사 선정 총회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진 627명은 시범아파트 전체 소유주의 39.6%에 불과하다.
◇내년 말까지 ‘일사천리’ 진행? 초과이익환수제 피하려는 의도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신탁 방식 재건축을 선택한 것은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건축을 통해 얻게 되는 개발이익이 조합원 1인당 평균 3000만원이 넘을 경우, 이익금의 최고 50%를 세금으로 내도록 한 제도인데,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로 2017년 말까지 제도 시행이 한시적으로 유예된 상태이다.
예비신탁사로 선정된 한국자산신탁은 내년 1월 말까지 소유주 동의를 얻어 안전진단(2월), 시공사선정총회(4월), 사업시행인가(8월), 조합원 분양신청(10월), 관리처분총회(11월), 관리처분인가 신청(12월)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어떻게든 2017년 말까지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두 달도 안 남은 기간에 561명(35.4%)의 추가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탁사 관계자는 “두 달 안에 1500명이 넘는 전체 소유주의 75%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마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기록일 것”이라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1월 말까지 주민 동의서를 모으더라도 2017년 안에 관리처분인가까지 받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부동산 시행사 관계자는 “정부가 서울 재건축 시장에 대해 규제 모드로 돌아선 상황에서 시범아파트가 서울시 심의를 한 번이라도 제때 통과하지 못하면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신탁 재건축은 올해 3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해졌다. 이전까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 공공기관만 단독 시행자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신탁업계는 여의도 시범아파트 재건축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할 경우 신탁 재건축 사업 전체가 위축되는 ‘역풍(逆風)’을 우려하고 있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신탁 재건축은 본래 조합방식 재건축의 비리를 막기 위해 신탁사에 공공기관 같은 지위를 준 것”이라며 “신탁 재건축의 다른 장점이 많은데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는 수단으로만 비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