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구리시에 살면서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대기업 이모(43) 차장은 지난달 서울 성북구에서 분양한 A 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다. 서울이 주소지로 된 청약 통장을 보유한 지 12년 만에 처음 한 청약이었다. 그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 규제를 하기 전에 저금리를 타고 집을 장만할 기회라고 판단했다”며 “주변에서도 올해가 서울에 집을 마련할 마지막 찬스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 했다.
박모(40)씨도 청약 통장에 가입한 지 2년 만인 지난달 서울 강동구에서 분양한 B 아파트 전용 59㎡에 청약해 당첨됐다. 그는 “청약에 당첨돼 수천만원 웃돈을 챙기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봤다”며 “나도 전매 제한이 풀리면 되팔 것”이라고 했다.
저금리 속에 부동산 시장이 열기를 더하면서 신규 아파트 청약 시장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 ‘리얼투데이’가 금융결제원 청약 접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1~10월까지 전국에 분양한 아파트 550개 단지에 1순위 청약 통장 341만5024개가 몰렸다. 인터넷 청약이 의무화된 2007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탓에 실수요와 투기 세력이 몰리면서 청약 시장이 어느 때보다 과열되고 있다”며 “오는 3일 정부가 추가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으면 시장 분위기가 급변할 수 있다”고 했다.
◇올해 청약자 사상 최대
올해 전국에서 접수된 청약 342만건은 작년 같은 기간(293만9110건) 보다 16% 증가한 것이다. 전국에 청약 1순위 자격자가 1029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청약 통장을 가진 1순위자 3명 중 1명은 올해 실제 청약한 셈이다.
특히 수도권이 뜨거웠다. 올해 수도권 1순위 청약 건수는 작년보다 76% 증가한 108만6777건이었다. 지방은 작년과 별 차이가 없었고, 대전·대구·울산 등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곳은 작년보다 청약 건수가 줄었다. 지난달에는 전국에서 분양한 74개 단지에 1순위 청약 통장 81만8857개가 몰려 2007년 이후 한 달 기준으로 가장 많은 청약자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10월 전국 청약 경쟁률도 14.71대1로, 인터넷 청약 의무화가 시작된 2008년 이후 가장 높다.
◇웃돈 노린 분양 쇼핑 횡행
올해 청약 열기가 뜨거운 이유는 작년 2월 청약 자격이 완화되면서 1순위자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작년 2월부터 수도권의 경우 청약 1순위 요건이 통장 가입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됐다. 실제로 2014년 516만명에 불과했던 1순위자는 작년 877만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1000만명을 돌파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지난 8·25 대책으로 택지 공급이 줄어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본 사람들이 대거 청약 시장에 뛰어든 측면도 있다”고 했다.
분양권 전매를 통한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 세력이 대거 몰린 것도 청약 시장 과열 이유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의 입지 좋은 곳에서 분양한 아파트들은 청약 마감과 동시에 수천만원 웃돈이 형성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청약 1순위 자격을 얻기가 쉬우니 일단 청약을 넣어보고, 초기 웃돈이 많이 붙으면 전매해서 팔고 아니면 그냥 계약을 포기하는 ‘분양 쇼핑’이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 이후 청약 시장 변화 불가피”
시장에서는 이러한 청약 가수요 때문에 오히려 실수요자들이 청약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했고, 과열 조짐을 보이는데도 손을 놓아 이런 상황을 자초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오는 3일 내놓는 부동산 대책에는 청약 시장 관련 대책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 시장이 냉각될 가능성이 있다”며 “전매 제한 기간 연장, 청약 자격 강화, 재당첨 금지 등으로 저강도 대책을 먼저 시행하고, 점차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대책 발표 이후 청약 시장 분위기가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동안 전매 차익을 노리고 묻지 마 청약을 했던 사람들이 제때 매도를 못 해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