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도금 대출 보증 규제가 시작된 1일, 서울 개포동 재건축 단지는 을씨년스러웠다. 서울 개포동 재건축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엔 방문자가 거의 없었다. 서울 개포동 B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규제가 발표된 후 분양권 전매 투자를 생각했던 고객 몇 분이 전화로 투자 의사를 철회했다”고 했다. 고분양가 논란을 빚은 개포주공 3단지 재건축인 ‘아너힐즈’는 지난 30일까지 분양 승인을 받지 못해, 중도금 대출 규제의 첫 적용 사례가 됐다.
반면 이날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 리버하임’ 모델하우스 앞에는 300m에 달하는 대기줄이 이어졌다. 이 단지는 흑석뉴타운 7구역을 재건축하는 아파트로, 전용면적 84㎡ 최고 분양가가 8억4900만원이다. 중도금 집단대출 보증 규제를 받지 않는다. 모델하우스 안에는 전용면적별 유닛(내부 모습)을 보기 위해서 30분 이상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람객이 가득했다. 모델하우스 앞에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도 많았다. 한 50대 남성은 “투자 차원에서 그동안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눈여겨봤지만, 최근엔 강남과 인접해 입지가 좋고 규제도 안 받는 단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1일부터 중도금 대출금 보증 규제를 가하면서 아파트 투자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한 주 새 수천만원 오르던 서울 개포동 재건축 단지의 상승세는 멈췄고, 강남과 인접했지만 대출금 보증 규제를 받지 않는 분양 아파트에 대한 관심은 고조됐다.
시장 분위기가 변화면서 국토부가 이날 도입한 규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열된 강남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도입한 규제가 전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도입 고민 많았던 규제, 단기적으로 효과 입증
정부는 당초 이번 규제를 도입하면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토교통부는 작년 말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전매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증가하고, 떴다방이 출몰하는 등 과열 조짐이 보이자 중도금 대출 보증 제한을 고려했지만 분양 시장 위축 가능성을 염려해 도입 시기를 저울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또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만 보증을 하는 부분도 애초엔 반대했었다. 보증 금액 한도에 대해서도 당초 3억원으로 제한하려 했다가 시장 위축을 이유로 수도권과 광역시의 경우엔 한도를 6억원으로 상향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체 부동산 시장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과열된 시장만 잡기 위해 한도를 조정했다”고 말했다.
◇강남 외 지역으로 파급 영향 주시하는 정부
국토부는 이번 정책이 강남 외의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단 이번 규제가 서울 부동산 시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 서울 강남권을 제외하면 분양가가 9억원을 넘는 단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남과 인접한 비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자가 몰리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함영진 부동산114 센터장은 “강남에서 수천만원의 웃돈(프리미엄)을 노리고 청약을 해온 가수요들이 이번 규제로 강북으로 시선을 돌리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중도금 대출 규제에서 벗어났고 강남과 인접한 흑석동 재건축 아파트, 하남 미사 분양 아파트 등이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규제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의 영향으로 추경에 나서는 정부 정책과 엇박자인 것도 국토부로서는 부담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투자자들을 만나면 브렉시트로 인해 거시 경제가 불안해지고, 정부도 추경을 통해 20조원을 풀겠다고 하면서 중도금 대출금 보증 규제에 돌입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당분간 혼란스러우니 관망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국토부는 이번 규제가 가뜩이나 침체한 지방 부동산 시장의 투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키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이번 규제로 서울 강북과 지방 부동산 시장에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추가 규제는 검토하고 있는 것이 없고, 투기 세력에 대한 실질적 단속을 시스템화해 과열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