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부산 등 전국 88개 지역, 월세가 전세 추월

뉴스 이석우 기자
입력 2016.01.24 18:58
조선일보DB

“구할 수만 있으면야 세입자 입장에선 전세가 좋지요. 그걸 누가 모르나요. 하지만 요즘은 방 1~2개짜리 집을 구할 때는 세입자들도 아예 전셋집을 기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부산 서구 토성동의 공인중개업소 A사장은 ‘전세물건이 왜 이렇게 없느냐’는 물음에 대해 “멀쩡한 집 집값의 70~80%만 내고 사는 전세제도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부산 서구에선 총 2374건의 임대주택거래가 이뤄졌다. 이 중 전세 거래는 718건, 월세 거래는 1656건으로 월세가 전체의 70% 정도나 됐다. 이 지역에 월세 거래가 유독 많은 것은 부산대·동아대·고신대 캠퍼스에다 부속 병원까지 함께 있어 학생과 교직원, 병원 직원들의 1~2인 가구 임대주택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본지가 24일 국토교통부의 ‘전국의 임대 주택거래 실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 251개 시군구(市郡區) 가운데 3분의 1인 88개 시군구는 이미 월세 거래량이 전세 거래량을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5년 전에는 월세 거래 비중이 전세보다 더 많은 곳이 30곳이었으나 최근 5년 새 급증했다. 우리나라 임대주택 시장의 대세(大勢)였던 전세가 사실상 소멸 단계에 접어들고 ‘월세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월세 비즈니스’가 확산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체 임대주택 거래량 중 월세 거래량이50%를 넘는 지역은 전세가 사실상 소멸되고 있는 곳”이라며 “임대주택 시장이 ‘반(半)전세’를 거쳐 ‘순수 월세 시장’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농(都農) 가리지 않고 빠른 월세화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임대주택 유형인 ‘전세’가 사라지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국토부의 조사를 보면 전국적으로 월세주택 거래 비중은 2011년 33%에서 지난해 44.1%로 상승했다. 월세 거래량이 전체 임대주택 거래의 60% 이상 차지하는 시군구가 2011년 4곳에서 지난해에는 33곳이 됐다.

월세 거래 비중은 경남 의령군(78.7%)과 충북 증평균(77.9%), 경남 함양군(72.1%) 순으로 높았다. 이들 지역은 월세가 전세 거래량의 3~4배에 이르는 셈이다. 의령군 대신공인의 신창호 대표는 “의령과 함안은 농촌지역이지만,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1~2인 가구의 임대주택 수요가 많다”며 “방 1~2개짜리는 월세가 30만~50만원 수준이어서 집주인도 세입자도 월세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월세화 속도는 전반적으로 농촌이 다소 빠르다. 하지만 도시의 월세화도 가볍게 보기 힘든 수준이다. 월세 거래 비중이 높은 상위 10개 지역 중 경남 밀양시와 강원 동해시를 제외하면 8곳이 군(郡) 지역으로 농·어촌 지역에 집중돼 있다.

반면, 한국 2위 도시인 부산의 경우 전체 16개구 중 북구를 제외한 15개 구에서 월세 거래량이 전세보다 많다. ‘고가(高價) 월세’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투데이’조사에 따르면 보증금을 제외하고 순수 월세만 500만원이 넘는 고가 월세는 전년보다 72% 증가한 43건으로 집계됐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집값 상승률 하락과 저금리 기조로 시작된 월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2~3년 내에 수도권도 월세 거래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주택 관리 등 ‘월세 비즈니스’ 확산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화 급진전으로 전세 시대에선 볼 수 없었던 ‘월세 비즈니스’가 개화(開花)하고 있다. 먼저 임대주택 관리 업종이 주목된다. 임대주택 관리업은 임대인 대신 세입자를 모집·관리하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주로 월세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2014년 2월 당시 19개였던 국내 주택임대관리업체는 작년 12월 현재 174개로 늘었다. 이 업체들이 관리하는 가구는 1만4034가구다. 박승국 임대관리업협회장은 “임대관리업체들이 입주자에게 세탁·가전제품 렌털·청소·도시락 배달 등 각종 생활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관련 업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세화 충격으로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도 변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신규 인가된 40건의 부동산 리츠(REITs) 중 22건은 임대주택에 투자하고 위탁 관리하는 리츠였다. 2014년(12건)보다 10건이 늘어났다. 또 싼 가격에 다세대주택을 여러 채 매입해 이를 8년 이상 장기 임대하는 준(準)공공임대주택으로 내놓는 임대주택사업자도 늘고 있다. 작년 말 준공공임대주택으로 등록된 가구는 전국 3570가구로 2014년 말(501가구)보다 3000여 가구 늘었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전세 소멸로 주거비 증가 등 부작용이 있지만 월세화를 막을 수 없다”며 “월세 관련 새 비즈니스에서 투자 기회를 잡고 돈을 버는 개인과 기업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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