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건설사는 과거 몇 년간 명절마다 직원들에게 멸치셋트를 선물했다. 한 직원이 매년 똑같은 멸치셋트를 주는걸 이상하게 생각해 회사에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회사가 모델하우스를 짓고 있는 땅을 빌려준 주인이 멸치셋트를 만드는 수산물 업체를 운영한다는 것. A건설사는 모델하우스 부지를 장기간 빌려준 것에 대한 감사와 성의의 표시로 땅 주인으로부터 수년간 멸치셋트를 구매해온 것이다.
돈내고 땅을 쓰는 건설사가 을(乙) 땅을 빌려 준 토지소유자가 갑(甲)인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요즘처럼 아파트 분양이 잘되면 모델하우스 부지를 찾기가 어렵다. 서울 시내 모델하우스 전용 건물을 상시 운영하는 대형 건설사들도 수도권·지방에서 분양을 하면 땅을 빌려 임시로 모델하우스를 지어야 한다. 모델하우스는 분양 사업을 할 때만 잠깐 쓰는 가건물이지만, 청약을 앞두고 잠재 고객들이 수천명씩 방문하는 곳이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이다. 또 규모가 300~500평대로 넓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모델하우스 부지는 많지 않다. 건설사들은 이런 부지를 많이 갖고 있는 임대사업자나 개인 땅주인으로부터 부지를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빌린다. 임대료는 적게는 2~3억원, 많게는 8~9억원에 달한다. 아파트 분양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지역에선 모델하우스 부지 임대료가 ‘부르는게 값’이다. 그러다보니 건설사들이 땅 주인에게 로비를 하는 것이다.
올 초 부천에서 모델하우스 부지를 두고 3개 건설사가 경쟁을 했다. 올해 부천 옥길지구에서는 한신공영·제일건설이 ‘옥길 제이드카운티’를, 호반건설이 ‘옥길 호반베르디움’을, GS건설이 ‘부천옥길자이’를 분양했다.
이 중 교통이 가장 좋고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모델하우스 부지를 차지한 곳은 한신공영과 제일건설이 짓는 옥길 제이드카운티였다. 제이드카운티는 비록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땅에선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부천의 중심 상업지구인 부천시청 근처에 모델하우스를 마련했다. 주로 부천 주민들을 타깃으로 하는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이 이동하기 편한 곳에 모델하우스 부지를 찾아 임대한 것이다.
호반건설과 GS건설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모델하우스 부지를 찾지 못했다. 호반건설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0분 떨어진 주택가에, GS건설은 기초 공사를 앞둔 ‘부천옥길자이’ 부지 안에 모델하우스를 세운 뒤, 가까운 지하철역으로부터 셔틀버스를 운영했다. 아직 도로와 흙 밖에 없는 허허벌판에 모델하우스를 운영한 것이다.
B건설사 관계자는 “동일 지역에서 여러 건설사들이 비슷한 시기에 모델하우스를 지으려다보면 부지에 대한 수요는 높은데 공급은 한정 되어 있다”며 “현장과 아주 가깝지 않아도 일단 모델하우스를 만들어야 하니 어렵게 부지를 찾아서 짓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3개 단지의 청약 성적은 모두 좋았다.
부천옥길자이처럼 아파트가 지어지는 부지 안에 모델하우스를 지으면 임대료를 아낄 수 있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조성하는 부지 내 모델하우스용 임대료는 정찰 가격이 있다. 하지만 민간인이나 임대사업자가 빌려주는 모델하우스용 땅은 ‘부르는게 값’이다.
C건설사에서 근무하는 한 분양소장은 “최근 1년 사이로 모델하우스 부지 임대료가 10~15% 올랐다”며 “분양 물량이 많아지면 건설사 간에 경쟁이 붙어 임대료가 올랐다”고 말했다. D건설사 관계자는 “수원, 광교 등 모델하우스 부지 500평짜리 임대료는 1년 전 약 3억원이었던 것이 비해 최근 4~5억원”이라고 말했다. E건설사 관계자는 “모델하우스 부지를 가진 땅 주인이 진짜 ‘갑’”이라며 “요즘 같은 분양 호황기에는 땅 주인이 부르는게 값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건설사들이 ‘완판’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현장의 경우 그야말로 ‘아무데나’ 짓기도 한다. F건설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분양이 잘 되기 때문에 현장 근처에 짓지 않고 멀리 지어도 어떻게든 소비자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점을 감안해 교통이나 입지가 좋지 않더라도 당연히 ‘완판’될 것으로 예상되는 ‘핫한’ 분양지는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은 땅을 빌려 모델하우스를 짓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