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번호 00XX, 양재동 다세대에 입찰하신 15명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 법정. 경매를 진행하는 판사가 입찰자를 발표하자 법정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서초구 양재동의 한 다세대 주택 2층 가구가 경매에 부쳐졌는데 총 15명이 입찰에 참여했다. 고급 아파트도 아니고 면적도 83㎡(약 25평) 밖에 되지 않은 다세대 주택 경매에 십여명이 몰리는 이례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낙찰자 김모씨는 4억7310만원을 써냈다. 감정가는 4억8199만원으로 낙찰가율은 98%에 달한다. 다시 말해 100만원짜리를 98만원에 샀다는 뜻이다. 경매 시장에서 이 정도면 거의 제값을 주고 산 셈이다. 경매 물건을 제 값 다주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냥 물건을 사는 편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경매전문업체 부동산태인 관계자는 “요즘 아파트가 잘 나가는 건 물론이고, 강남처럼 위치가 좋은 곳은 다세대·연립도 경매에서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경매시장에서 아파트 뿐만 아니라 연립·다세대 주택의 몸값도 오르고 있다. 전세난으로 아파트 매물이 줄어들자 연립·다세대 주택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현상이 경매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실수요자들이 조금이나마 더 낮은 가격에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경매에서 연립·다세대를 찾아 나선 것이다.
경매 입찰을 시작하는 오전 10시부터 법정 안팎은 웅성거렸다. 법정 앞 복도에는 응찰자들과 부동산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격을 흥정하거나 휴대전화를 붙들고 최종 입찰 가격을 정하기 위해 통화를 나누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입찰 마감 시간인 오전 11시 10분이 되자 약 50~60명의 응찰자들이 우르르 법정에 들어와 빈자리를 메웠다.
이날 낙찰된 물건은 총 8개로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 중 아파트는 1건, 연립·다세대 혹은 다가구 물건은 3건이었다. 서초구 양재동의 또 다른 다가구 주택은 감정가 8억9958만원보다 낮은 7억5891만원, 낙찰가율 84.4%에 팔렸다. 또 다른 동작구 상도동의 한 다세대 주택은 낙찰가율80.7% 수준인 1억9119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중소형 아파트는 매매시장에서도 잘 팔려 경매까지 넘어 오는 일이 적다. 또 경매에 넘어와도 감정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낙찰된다. 이날 종로구 명륜동의 아파트를 낙찰받은 김모씨도 감정가 5억5000만원보다 더 높은 5억5125만원을 써내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경매전문업체 지지옥션이 분석한 서울 연립·다세대 경매 낙찰률(경매 대비 낙찰건수)을 보면, 올 4월에는 총 433건 중 194건이 새 주인을 찾아 낙찰률이 44.8%에 달했다. 서울 연립·다세대 낙찰률은 지난 2월 47.7%로 최근 1년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계속 낙착률이 상승중이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꾸준히 상승해 지난 4월에는 80.1%, 이달 들어선 평균 81.1%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 연립·다세대 낙찰가율이 81%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11년 7월 (84.1%) 이후 3년 9개월만에 처음이다. 입찰 경쟁률이 5.0명을 웃돈 것도 2011년 2월 5.1명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감정가보다 더 비싸게 낙찰되는 연립·다세대 주택도 나왔다. 아파트는 워낙 수요는 많고 물건은 적어 웃돈을 붙여 낙찰받는 사례가 많지만, 연립·다세대는 흔지 않다. 지난 4월 양천구 신정동 대도빌라 3층 가구는 감정가가 1억원이었지만, 1억6100만원에 팔렸다. 응찰자가 무려 60명이나 몰리면서 입찰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낙찰가율이 161%를 기록했다. 노원구 상계동 남광하이빌 2층 가구는 응찰자가 38명이 몰렸다. 감정가 1억6600만원보다 더 비싼 1억7100만원에 낙찰되면서 낙찰가율은 103%로 집계됐다.
지지옥션 이창동 선임연구원은 “교통과 생활권이 좋고 주차장도 있는 연립·다세대 주택은 경매시장에서도 아파트만큼 수요가 높다”며 “전세난으로 인해 실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수요자들의 경매 참여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