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이 시행된 24일, 아파트단지가 많은 서울 목동, 경기도 용인 등의 은행 영업점엔 개점 전부터 줄이 늘어서는 등 사람이 대거 몰렸다.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이거나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두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하면 됨) 주택담보대출을 연 2.63~2.65%의 비교적 싼 금리로 갈아탈 수 있게 한 상품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현재 안심전환대출 신청 건수는 총 2만4405건, 3조121억원에 달해 애초 설정했던 총 한도(20조원)의 15%가 하루 만에 소진됐다. 신한은행 파주 운정지점 등 일부 영업점은 대출 신청자가 밀려들어 자정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하는 등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한편 현장에선 전환 조건 등을 두고 큰 혼란이 빚어졌다. 대출 전환을 신청하려던 사람 중에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를 다시 산정한다는 말을 듣고 발을 돌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휴가를 내고 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허탈하게 하루를 날린 이들도 있었다.
◇LTV 재산정해야… “집값 떨어졌으니 대출 일부 갚으세요”
경기도 용인의 50평(165㎡)대 아파트에 사는 한모(70)씨는 24일 이자가 낮은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인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하러 은행을 찾았다가 포기하고 돌아왔다. 한씨는 2009년 집을 분양받은 후부터 연 3.65%의 고정금리로 주택담보대출 4억5000만원을 받아 써오다가 낮은 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는 소식에 은행에 대출 전환을 신청했다. 그러나 은행 직원은 한씨가 가져온 서류를 보더니 “대출을 전환하려면 LTV를 다시 산정해야 하는데, 조회 결과 6년 전 7억6000만원이던 집값이 5억5000만원으로 떨어졌더라”며 “LTV 70%를 적용하면 3억8500만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므로 6500만원을 갚지 않으면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자 부담 좀 줄여보려고 은행에 갔다가 수천만원을 갚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환을 포기했다. 대출 갈아타려고 마이너스통장을 만들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안심전환대출 시행 첫날인 24일, 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LTV·DTI를 다시 산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안심전환대출은 기존의 대출을 없애고 새로 대출을 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LTV·DTI를 새로 산정한다. 용인·일산 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 하락폭이 큰 몇몇 지역은 LTV를 새로 산정하면 대출 가능 금액이 많이 줄어들어 대출 중 일부를 상환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A은행 죽전지점 직원은 “오늘 LTV 때문에 대출을 거절당하고 화를 내며 돌아간 사람이 20명 정도 되고 또 다른 20여명은 대출금 중 일부를 먼저 갚기로 했다. 용인의 일부 아파트는 금융위기 이후 가격이 40% 정도 떨어졌는데, 이 때문에 많게는 8000만원을 토해낸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은퇴 생활자들이 많은 지역에선 DTI(총부채상환비율)가 문제가 됐다. 안심전환대출은 원금을 갚아나가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선 LTV만큼 DTI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은퇴를 해서 급여가 사라지거나 신용대출을 받으면 DTI가 급격히 떨어진다. B은행 관계자는 “60세 이상 은퇴자 중에 DTI를 다시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분통을 터뜨리며 돌아가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LTV·DTI 재설정으로 인한 상환 문제에 대해 심현섭 은행연합회 여신제도부장은 “집값이 하락하거나 소득이 없어져서 대출금을 토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앞으로 이와 관련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강남 등에선 “우리 집 그렇게 비싸지 않다” 항의도
집값이 높은 편인 서울 강남구 등에선 ‘주택 가격 9억원 이하’ 조건을 맞추지 못해 항의하는 이들도 많았다. 주택 가격은 한국감정원이나 KB국민은행이 집계하는 부동산 시세를 기준으로 삼는데, 국민은행 시세가 한국감정원보다 통상 15~20% 정도 높다. 우리은행 김인응 압구정지점장은 “오늘 우리 지점을 방문한 동네 주민 중 수십명은 집값이 9억원을 약간 넘어 전환을 못 하고 돌아갔다. 이들 중 일부는 ‘내 주택이 왜 9억원이 넘느냐. 국민은행 말고 한국감정원 가격을 기준으로 하라’며 항의했지만, 국민은행 시세가 더 현실적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기준을 바꿀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몇 년 동안 금융당국이 고정금리 비율 목표치까지 세우면서 ‘고정금리로 갈아타라’고 독려해 ‘고정금리―원금상환형’으로 대출을 바꾼 사람들은 이번 전환 대상에서 빠져 불만이 폭주했다. 2년 전 변동금리였던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꾸고 원금을 갚고 있다는 직장인 한모(40)씨는 “연 4%대인 이자가 부담돼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려고 했더니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 정부 말 듣고 착실하게 대출 갚는 사람만 손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