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가스처리시설 등 수주 다변화
중앙아시아·아프리카 등으로 지역도 넓혀
올 들어 482억 달러… 작년보다 5.2% 늘어
국내 건설사에게 해외 진출은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이다. 기후나 환경, 종교, 지정학적 리스크 등 갖가지 장애 요인들도 우리나라 건설역군의 진출 욕구는 꺾을 수 없었다. 덕분에 한국은 스페인과 미국, 중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의 건설대국에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주춤했던 해외건설 수주액도 지난 2005년 100억달러를 돌파 후 5년 만인 2010년 715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확장에는 부작용이 있는 법. 저가(低價) 수주로 지난해 건설사들은 최악의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일부 건설사들은 대규모 적자로 회사 존립마저 위협받았다. 국내 건설경기 악화로 해외 수주에 건설사들이 목을 매면서 출혈경쟁이 벌어진 탓이다. 다행히 지난해 내내 괴롭혔던 저가수주 악몽은 건설업계의 자구 노력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됐다.
◇건설업계 생존 위해 해외건설 체질 변화
건설사 스스로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 공격적인 해외 수주로 성장세를 이어오던 건설사들은 이제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수주액보다는 수익성을 먼저 봤다.
해외수주 공종도 도심 지하철과 가스처리시설 등 고부가가치 사업 수주가 많이 증가했다. 중동 이외에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수주 지역을 넓혔다. 또 저가 플랜트 위주에서 벗어나 수익성 극대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환경사업, 해상풍력발전, 해양플랜트 등 수주영역 다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건설사들의 변신은 실적개선으로 돌아왔다. 국토교통부는 올 들어 3분기까지 해외 건설 누적 수주액이 482억5000만달러(약 50조9200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2%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5년간 1~3분기 평균 누적 수주액(405억달러)보다 20% 정도 많고 2010년 역대 최고치(528억달러)에 비해 약 45억달러 부족한 수준이다. 공종별로는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정유공장 및 발전소 공사 등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 수주가 이어지면서, 올해 플랜트 건설수주 누계가 389억달러로 전체의 81%를 차지했다. 업계에서는 해외건설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 다변화를 추진한 것이 실적개선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컨소시엄이 대세…선진국형으로 수주방식 진화
수주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국내 업체간 경쟁을 지양했다. 이라크의 카르발라 정유공장 공사는 대형 건설사들이 각자의 기술력과 강점을 바탕으로 역할을 분담해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 리스크도 최소화했다고 평가받는다. 현대건설과 GS건설, SK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국내 4개 건설사는 지난 2월 이라크에서 60억4000만달러 규모 카르발라 정유공장 공사를 수주했다는 낭보를 날려왔다. 이라크 공사경험이 많은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석유정제 고도화시설 등을 맡고 GS건설은 원유정제 진공증류장치 등 화학설비, SK건설은 유틸리티 분야를 맡아 진행한다.
국내 건설사들은 쿠웨이트에서도 국내외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전체 공사의 60%에 달하는 일감을 따낼 수 있었다. 대우건설은 현대중공업, 글로벌 엔지니어링 업체 플루어와 함께 34억달러 규모의 쿠웨이트 '클린 퓨어 프로젝트' 정유시설 공사를 수주했다.
SK건설도 일본 JGC와 함께 동일한 쿠웨이트 프로젝트 중 48억달러 규모의 미나 알 아흐마디 정유플랜트 공사를 따냈다.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한단계 진화해야
연초부터 해외에서 잇따라 대형 수주를 따내며 낭보를 전하고 있지만, 지난해 부실사업의 주범인 중동지역 수주 비중이 높아 채산성 측면에서 우려가 크다. 아직도 중동 지역의 인건비 상승과 공기지연 등 악재가 많기 때문이다. 중동지역 정세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이라크 내전으로 대형공사 발주가 부진한데다, 정세 불안에 따라 중동지역 수주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이라크는 상반기 12건(80억6000만달러)을 수주했으나 3분기에는 한건도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또 국내 건설업은 성장은 플랜트 등 제한된 분야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글로벌 건설사의 플랜트 부문 매출 비중은 40%, 토목과 건축 부분 매출 비중은 51%다. 같은 해 국내 건설사의 플랜트 매출 비중은 83%에 이른다. 토목과 건축은 17%에 불과했다.
외국 건설업체들은 도급공사보다 투자개발형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도급공사는 국제 입찰 경쟁이 치열해 공사단가를 맞추기 어렵다. 반면 투자개발형사업은 기업이 사업개발, 지분투자, 제품구매, 설비운영 등 사업 전 과정에 참여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입찰 경쟁이 비교적 낮아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지분 투자가 필수이다보니 자금조달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 건설사들이 유럽, 미국 등 선두 업체들과 중국 등 후발 업체 사이에 끼인 것도 위험하다. 유럽 건설사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높여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수주 시장에서 국내 건설사를 위협하고 있다.
김태엽 해외건설협회 정보기획실장은 "국내 건설사들도 도급공사 저가수주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의 금융지원을 활용해 투자개발형 사업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