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완화 공언해 놓고 잇따라 법안 상정도 못해
매매시장 혼란만 가중시켜… 서울 아파트값 4주 연속 하락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정책들이 국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달 임시국회에서 법안통과는커녕 상정도 못한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上限制) 탄력 운영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올 2월 말 정부의 '주택 임대소득 과세(課稅)' 방침 이후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부동산 매매 시장에 또 다른 악재(惡材)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미 서울 지역 아파트값은 이번 주에도 약세를 보이며 4주 연속 떨어졌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 논의도 못해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 10일 당정협의를 열고 이달 임시국회에서 분양가 상한제 탄력 운영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했다. 원칙적으로 상한제를 폐지하고 집값 급등 우려가 있는 지역에 대해 제한적으로 실시하자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2012년 9월 국회에 제출된 이후 수차례 통과를 추진했으나 번번이 야당 반대에 부딪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정(黨政)은 "이번에는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으나 국회에서 이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달 15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이어 17일 전체회의에서도 안건(案件)으로 채택되지 못한 것.
국토부 관계자는 "야당이 반대하는 데다 법안심사소위 위원장도 야당이 맡고 있어 상정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회에 제출됐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법안 역시 상정되지 못했다. 초과이익 환수제는 재건축 사업으로 생기는 이익의 일정 부분을 부담금으로 거둬들이는 제도다.
정부는 지방선거가 끝나고 올 6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한 번 이 법안들의 통과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집값 상승을 우려하는 야당의 반대가 만만찮아 당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통과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매매 시장엔 또 惡材?
규제 완화 법안에 제동이 걸리면서 주택시장엔 "작년과 같은 정책 리스크(risk)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1 대책'을 통해 ▲다(多)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 폐지 ▲취득세 영구 인하 등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8개월이나 지난 작년 연말에 천신만고 끝에 통과됐다. 그 사이 주택시장은 거래가 얼어붙고 집값도 약세를 보이면서 침체의 골이 더 깊어졌다.
업계에서는 잇따른 정부와 정치권의 헛발질이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올 2월 임대소득 과세 방침 이후 기존 주택 시장의 투자 심리는 위축된 상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달 28일(-0.01%)을 시작으로 이달 18일까지 4주째 하락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 일부 재건축 단지는 지난 2월과 비교해 시세가 1000만~4000만원까지 빠졌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자는 관망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시장에서 저가(低價) 매물도 소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부동산 매매 시장 약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규제 완화 조치 지연과 투자 심리 위축에다 이사철이 끝난 올 4월 말 이후엔 부동산 비수기(非需期)까지 겹치기 때문이다. 남희용 주택산업연구원 원장은 "아무리 좋은 정책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간신히 소생(蘇生)하려던 부동산 경기(景氣) 불씨가 다시 꺼지면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