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기지개 못 켜는 이유]
임대 소득 노리던 수요자들… 수익률 하락에 구매 미뤄
사라졌던 매물 다시 쏟아져도 사려는 사람없어 呼價 떨어져
국회에 법안 제출하는 6월까지 주택시장 소강상태 이어질 듯
서울 여의도에 있는 T부동산중개소는 요즘 '개점휴업' 상태다. 아파트 매매 계약은커녕 전세 문의 전화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4~5년 동안 끊겼던 거래가 올 들어 크게 늘고 일부 지역은 집값도 10% 이상 올랐지만, 1~2주 전부터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중개소 직원은 "최근 집값이 많이 올라 거래가 줄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갑자기 세금을 더 거두겠다고 하니 누가 집을 사려고 하겠느냐"며 "집주인도 가격을 더 이상 내릴 수 없다고 버텨 주택 거래가 다시 중단됐다"고 말했다.
활기를 띠던 부동산 시장이 다시 주춤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정부의 규제 완화책으로 회복 조짐을 보이던 투자 심리가 정부의 전·월세 소득에 대한 과세(課稅) 방침의 여파로 얼어붙고 있다. 주택을 사려는 사람들은 결정을 미루고, 집주인들은 최근 거둬들였던 매물을 다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올 들어 급등한 가격 부담에 불투명한 국내외 경제 여건까지 겹치면서 주택 시장이 올 하반기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급등한 집값에다 稅 부담까지
서울 구로구의 D오피스텔 모델하우스 분위기는 보름 전과 완전히 딴판이다. 주말이면 투자자가 1000명 정도 몰리고 계약도 하루 4~5건씩 이뤄졌는데 최근 들어선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인근 지역에 분양 홍보 플래카드도 내걸었지만 조만간 계약하기로 약속했던 투자자들도 잇달아 취소하고 있다.
이 오피스텔의 분양 담당자는 "정부의 세제 감면으로 세부담이 크지 않다고 설명해도 고객들이 꺼린다"며 "이미 임대 수익을 올리던 투자자도 오피스텔을 처분하려는데 누가 새로 장만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부는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 범위가 작고 세금도 많지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집주인이나 매수자는 그동안 없었던 세금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는 반응이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重課) 폐지, 취득세율 영구 인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 정부가 거래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책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임대 소득에 대한 세원(稅源) 노출이라는 현실적 문제 앞에서 시장으로 돌아오던 투자자들이 일제히 멈춰 선 셈이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전셋집을 여러 채 가진 자산가들은 이번 기회에 자산 가치가 높은 주택을 제외하고 모두 처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1~2주 전만 해도 오르던 집값에 조바심을 내던 매수자들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최근 시세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가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의 과세 방침까지 전해지자 임대 소득을 노리던 수요자들이 투자를 유보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K부동산공인 직원은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매물이 하루 3~4개씩 나오는데 사려는 사람이 없어 호가만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의 W부동산중개소 직원은 "최근 임대용으로 소형 아파트를 사려던 다주택자의 세 부담이 가장 크게 늘었다"며 "집값 상승으로 주택 구입비도 늘고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기대하던 임대 수익도 줄었다"고 말했다.
◇올 6월 이후 시장 방향 정해질 듯
전문가들은 냉각된 투자 심리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경우 주택 거래가 끊기고 가격도 더 내려 부동산 불황이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내외 경제 상황도 투자 심리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이 연초부터 회사채 채무 불이행, 위안화 하락 같은 악재를 겪는 게 대표적이다.
소강상태에 빠진 주택 시장은 정부가 임대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주택법·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올 6월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에선 세금 부과 기준을 놓고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되는 만큼 이 법안들이 당초 원안(原案)대로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운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정부의 세금 부과 방침이 국회의 법 통과로 확정될 때까지 주택 시장의 여진(餘震)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팀장은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는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조치이고 2년간 과세 유예 조치도 마련됐지만 시장에 이미 상당한 충격을 줬다"며 "다만 주택 가격이 여전히 바닥권 수준이어서 급락하기보다 당분간 보합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