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窓… 풍경을 끌어안고 생각을 끌어내다

뉴스 김미리 기자
입력 2013.11.29 03:02

[건축가의 空間] [5] 최욱의 '명상하는 사무소'

사무실 양쪽으로 20m의 기다란 창, 철·돌… 자연 재료만 써서 정갈하게
현란해야 디자인 잘 되는 건 아니죠

건축가 최욱

안으로 내딛는 순간 침묵(沈默)이 말을 걸었다. 4층 입구로 들어서자 4층과 5층 일부를 틔워 만든 통층의 공간이 방문객을 맞았다. 이 두 층을 난간 없는 철계단이 잇는다. 행여 정적을 깨뜨릴까 사뿐사뿐 계단을 밟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와.' 짧은 탄성이 새나왔다. 사무실 양쪽으로 뚫린 총 길이 20m짜리 기다란 창을 통해 기울어가는 가을이 마주하고 있었다. 한쪽은 연세대 동문(東門) 쪽 산이, 반대편 창으론 이화여대 후문 쪽 언덕이 보였다.

적막공산(寂寞空山). 지난주 서울 대신동 봉원사 입구에 있는 건축가 최욱(50·원오원건축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떠오른 단어다. 창으로 쏟아진 바깥 풍경 탓이기도 했고, 창 안의 분위기 탓이기도 했다. 직원 35명이 근무하는데 소리가 거의 안 났다. 이 사무실의 별명은 '절간'이다.

◇풍경을 담다, 명상을 하다

"침잠(沈潛)하는 명상. 우린 건축이 그런 과정이라 봅니다." 표정 변화없이 최욱이 조곤조곤 말했다. 좀처럼 나서지 않는 그의 건축을 빼닮은 말투다. 최욱은 사무실을 "명상하는 공간"으로 여겼다. "건축이란 여타의 것을 포용하면서 내면의 고요함을 가지는 것"이라는 건축 철학을 사무실을 매개로 직원과 나누길 바랐다.

그래서 2009년 사무실을 옮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가 '풍경'이었다. 그라운드스케이프(groundscape·지표면의 풍경)를 중시하는 그는 항공사진으로 서울시를 한참 훑다가 한 건물에 시선이 꽂혔다. 안산(鞍山) 끝자락과 이화여대 쪽 언덕이 보이는 봉원사 입구, 유명 곰탕집으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5층 건물 중 3~5층(연면적 1322㎡·400평)을 쓰게 됐다.
 

서울 대신동 원오원건축 5층 회의실. 중앙에 투명 유리창으로 만든 회의 공간이 있고, 양쪽으로 길게 유리창이 나있다. 오른쪽 창 밖으로 연세대 동문 쪽 산이, 왼쪽 창 밖으로 이화여대 후문 쪽 언덕이 보인다. 바깥 풍경이 실내로 들어와 펼쳐진 듯하다. /원오원건축 제공

풍경은 이 사무실의 8할이다. 사무실 디자인을 할 땐 '창(窓)'이 핵심이었다. 층마다 커다란 통창을 양쪽으로 길게 설치했다. 바깥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을 위해서였다. 창 아래엔 턱을 만들어 직원들이 걸터앉아 원경(遠景)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컴퓨터 보고 모형 만들고, 눈앞 50㎝ 반경 이내에 매몰된 상황에선 창의력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에는 부산 적산 가옥 돌출창(베이 윈도·bay window)에 앉아 볕을 쬐며 바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의 유년기 기억이 반영돼 있다. 최욱은 "적절하게 만들어진 창은 사람의 눈과 같은 영혼의 은신처"라고 말했다.

◇'날것'의 공간, 피어오르는 상상

최욱의 사무실은 담백하고 정갈하다. 유리·철·돌·콘크리트 같은 자연 재료만을 썼다. 그에게 건축은 "공간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며 자신의 의무는 "디테일을 최소화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선은 간결한 직선을 썼다. 정적인 기운을 강조하기 위해 수직보다는 '수평'을 주로 활용했다.

최근 창의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사무실 형태나 색을 특이하게 하는 기업이 많다. 최욱의 생각은 다르다. "생각이 형태화되면 고정관념이 되기 마련입니다. '날것'의 공간에 있을 때 자유로운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여백'이 많지 않을까요."

최욱은 요즘 사무실 풍경을 거리로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곰탕집이 있던 1층에 모형실을 만들기로 한 거다. 투명 유리창을 통해 젊은 직원들이 뚝딱뚝딱 모형 만드는 모습을 행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할 셈이다. 자연에서 빌렸던 풍경을 이젠 사회에 갚아줄 차례다.
☞최욱
한국미를 현대적으로 담백하게 해석한 건축 스타일을 추구한다. 홍익대 건축학과,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에서 공부했다. 서울 북촌에서 한옥 프로젝트를 많이 해 ‘동네 건축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초대 건축가. 대표작 학고재 갤러리, 두가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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