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空間] ④ 김찬중의 '창고 사무실'
마트 2층 건물 폐허같던 공간… 천장 걷어내 탁 트이게 만들고 공중 철 구조로 이동성도 확보
설계비부터 깎자던 건축주들, 여기선 말도 안꺼내… 신기하죠
멋진 사무실에서 일하면 정말 능률이 오를까? 그저 디자인 지상주의자들이 지어낸 허상 아닐까? 건축가 김찬중(44·더시스템랩 소장)의 사무실 실험기에 따르면, 이 명제는 확실히 '참'이다.
김찬중은 2년 전까지 서울 제기동 평범한 상가건물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했다. 천장 낮고(280㎝) 네모 반듯한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7년 전 사무실 열 때만 해도, 패기만 있으면 열악한 환경이 대수겠느냐고 생각했다.
호기는 5년 만에 꺾였다. 업무 특성상 전 직원이 밥 먹듯 야근을 해야 했다. 답답한 환경에서 그러길 반복하다 보니 모두 폐인 일보 직전까지 갔다. 꾀죄죄한 일상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다. 김찬중은 결심했다. '건축 일 1~2년 하고 말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나은 환경에서 즐겁게 일하자.' 게다가 전공이 공간 아닌가.
새 사무실의 조건은 딱 하나였다. 무조건 천장이 높을 것. 물리적으로, 사무실의 답답한 분위기는 머리 닿을 듯한 낮고 평평한 천장 탓이라 믿었다. 하지만 요즘 지은 천장 높은 건물은 임차료가 너무 비쌌다. 싸면서 높은 천장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 대안은 '창고'였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우연히 동네 마트에 들렀어요. 음료수 사서 도로에 나와 마시는데 마트 위로 박공지붕이 조금 보이더라고요. 알아보니 개척교회, 물류창고로 쓰다가 버려져 폐허가 되다시피 빈 창고였어요. 이거다 싶었죠." 경기도 성남시 분당 이매동의 한 마트 2층에 있는 김찬중의 '창고 사무실'은 이렇게 탄생했다.
간판 하나 없고, 작게 네모 하나만 뚫은 강판으로 2층 전체를 두르고 있어 도로에서 보면 전혀 사무실이 안 보인다. 상가 계단을 올라가면 반전같이 너른 데크를 깔아 만든 야외 정원이 나온다. 그 옆에 창고의 박공지붕을 그대로 살려 만든 사무실(264㎡·80평)이 있다. 사무실 안은 공장처럼 탁 트였다. 지붕을 지지하는 철구조물을 놔둔 채, 원래 있던 평평한 천장을 뜯어내자 지붕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5m의 높이가 확보됐다. 기존 지붕에 단열재를 바르고 하얗게 뿜칠해 환하게 만들었다. 야외 정원을 향한 벽면은 유리로 돼 있고, 나머지 삼면은 진회색 골강판(골이 있는 철판)으로 둘렀을 뿐 별다른 디자인을 가미하지 않았다. 단순한 구조로 공간감을 더 살렸다.
개방감으로 직원들의 숨통은 틔웠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환경을 수시로 바꾸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천장 아래 사각 형태로 철 구조를 공중에 띄웠다. 여기에 조명·전원 등 설비 시스템을 달았다. 전원 연결 장치는 카센터용 전선 릴이다. 카센터에서 정비공이 공구를 연결해 고장난 차를 어디서든 손볼 수 있듯, 직원들은 어디에 앉든 전원줄을 길게 뽑아 쓸 수 있다. "모든 도구와 조명이 달린 수술실 붐박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가구도 움직인다. 프로젝트 사진을 거는 보드와 테이블에 바퀴를 달아 쉽게 구조를 바꾸게 했다. 이렇게 해서 '이동성(mobility)'과 '유연성(flexibility)'까지 겸비했다.
실험은 성공했을까? "환경이 바뀌니 확실히 직원들이 덜 피곤해해요. 네모 책상에서 붙어 회의할 때하고는 달리 아이디어도 자유롭게 주고받고요." 금전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는 '덤'이다. "신기하게 이전 사무실에선 건축주들이 사무실에 상담하러 왔다가 설계비를 깎고 봤는데, 이 사무실에 와서는 여기저기 구경하고 이것저것 물으면서 정작 깎자는 얘길 안 하시네요. 사무실 설계 의뢰도 많이 들어오고요." 보이지 않는 '공간의 힘'이다.
['창고 사무실'에서 배우는 팁]
1. 천장을 노출하라
일반 사무실 천장 높이는 280㎝ 정도. 천장을 떼어내면 적어도 30㎝ 정도는 높아진다.
2. 가림막을 없애라
가림막이 가뜩이나 좁은 공간을 더 답답하게 한다. 굳이 필요하면 이동식으로.
3. 야외 정원
정원은 공간 낭비가 아니다. 상상력이 샘솟는 오아시스다.
☞건축가 김찬중
고려대 건축학과, 미국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졸업. 200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참가. 건축은 “각 건축물에 맞는 최적의 ‘시스템’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마다 특색이 확연히 다르다. 대표작 ‘폴 스미스 플래그십스토어’ ‘연희동 갤러리’ ‘래미안갤러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