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상상력이 폭발하는 빨간 亭子(정자)

뉴스 김미리 기자
입력 2013.10.30 03:56 수정 2013.10.30 09:46

[건축가의 空間] [3] 문훈 '건축발전소'

화투의 팔광이 붙은 빨간 문 열면 서랍장도 휴대전화도 전부 빨강
사무실 한가운데 점집 같은 亭子
주체 못하는 끼, 건축에 담고 싶어… 나만의 무릉도원 여기로 옮겼죠

덜어내고 빼는 디자인이 종교처럼 지배하는 건축계에서 이 사람의 존재는 특별하다. 스스로를 '그로테스크 건축가'라 부르는 건축가 문훈(45). 뿔 달린 펜션(락있수다), 핫핑크색 막대 사탕 같은 집(롤리팝하우스), 미끄럼틀 모양 책장이 있는 집(파노라마하우스)…. 그의 건축은 튀지 못해 안달이다. 뒷짐 지고 점잔 빼는 건물을 어퍼컷 한다.

"제가 뭐든 과해요. 술은 '과음'하고, 운전은 '과속'하고, 디자인은 '과도'하게! 아, 절제 좀 해야 하는데." 입으론 절제를 말하지만 끼가 어딜 가나. 말은 청산유수. 한 마디 한 마디에 관념적 철학을 꼭꼭 담아 뱉는 건축가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그래서 '건축계의 이단아'라 불린다.

사무실 한가운데 뜬금없이 빨간 정자를 들여다 놓은 건축가 문훈. 그에게 정자는 도심 한복판에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우주선’이자, 사무실 이름처럼 ‘건축발전소’다. /김연정 기자

서울 역삼동 상가건물 2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문훈건축발전소'는 문훈식(式) '과함'의 결정체. 문부터가 범상치 않다. 치과와 나란히 붙어 있는 사무실 문은 시뻘건 색. 거기에 화투의 '팔광'을 패러디해 디자인한 로고가 붙어 있다. 이건 시작일 뿐, 문을 열면 더 가관이다. 새빨간 정자(亭子)가 사무실(73㎡·22평)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다. 정자 안에 있는 소품은 공간을 더 붉게 물들인다. 휴대전화도 빨강, 계산기도 빨강, 철제 서랍장도 빨강, 펜도 빨강, 수첩도 빨강이다. 공간 전체가 온몸으로 '내 이름은 빨강'이라 아우성친다. 어두운 조명에 공간이 한껏 달아올라 몽롱한 기운마저 감돈다.

문훈의 자리는 정자 안이다. 그와 얘기하려면 신발을 벗고 정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흰색과 검정 타일이 격자무늬로 붙은 바닥은 온돌로 돼 있다. 마치 사주 보러 무당을 찾은 이들처럼, 건축주는 건축가와 마주한다. 무슨 점집 분위기다.

황소 뿔 모양을 단 펜션 ‘락있수다’. 건물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문훈 제공

'정자'와 '점집'. 이 두 요소는 의도적인 메타포(은유)다. "정자는 기능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자유로운 건축입니다. 사용자에 따라 용도가 바뀌는 '열린 공간'이죠." 문훈의 건축 모토인 '덜 속박하는 건축' '플레이풀(playful·놀이 같은) 건축'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빨간 정자'를 "도심 한복판에서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 수 있는 나만의 '우주선'"이라 했다.

점집은 문훈 건축의 또 다른 축 '샤머니즘'을 표현한다. "예전에 영화 '서편제'를 보고 판소리에 나도 모르게 흐느낀 적이 있었어요. 뭐라 말할 수 없는 한국의 에너지를 느꼈어요. 무속신앙은 그걸 응축하고 있고요." 주체할 수 없는 오묘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건축에 담고 싶어 점집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핫핑크색 막대 사탕 모양의 주택 ‘롤리팝하우스’. 멀리서도 한눈에 튀는 형태와 색깔이다. /사진가 남궁선

문훈은 자신의 옷마저 공간과 일체화했다. 그는 '명품 조롱족'이다. 3만원짜리 검정·빨강 옷을 사서 각종 마크를 붙여 '튜닝'한다. 벤츠, 할리데이비슨, 푸조, 셸…. 온갖 기업 마크로 점퍼를 도배했다. 기업 로고는 물신주의 시대의 '현대판 부적'이란다. 궤변 같기도 하지만, 사물을 희화화해 가치 판단을 뒤흔드는 게 바로 그의 작업 방식이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자신만의 무릉도원을 만든 것처럼 나만의 무릉도원을 사무실에 만든 겁니다. 사무실이 곧 내 건축이고, 내 삶이고, 바로 나지요." 제자들이 선물해준 새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새끼손톱을 반짝거리며 그가 말했다. 문훈은 다음 사무실 디자인까지 계획해뒀다. "버려진 창고 건물에 직원 수만큼 작은 빨간 정자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단다. 엉뚱한 그의 공약(公約)이 왠지 공약(空約)이 아닐 것 같다.
☞건축가 문훈

도발적 형태와 튀는 색상의 건축물로 '괴짜 건축가'로 불린다. 유년 시절을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보낸 덕에 자유로운 상상력을 길렀다. 인하대 건축학과와 MIT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5년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 대표작으로 '현대고등학교' '홍대 앞 상상사진관' '롤리팝하우스' '락있수다' 등이 있다. 최근 3년 동안 단독주택 15채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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