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순위자 웬만한 인기단지 아니고서는 청약통장 쓰는 것 꺼려
통장 필요없는 3순위 청약 후 계약 안해도 별다른 손해 보지 않는 것도 장점
주변 사람에게 부탁해 경쟁률 올린 일부 단지 청약률 착시효과 주의해야
지난 6일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에서 치러진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2.0'의 1·2순위 청약 결과는 예상보다 저조했다. 전체 965가구 모집에 1·2순위 청약 신청자가 695명밖에 안 됐다. 하지만 다음 날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3순위 청약에 1159명이 몰려 1·2순위 때 0.72대1에 불과했던 청약 경쟁률이 1.92대1까지 올랐다. 반도건설 분양 담당자는 "3순위 접수가 끝났는데도 1500여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려 분양 상담사들이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수도권 분양시장이 '3순위 청약'으로 재편되고 있다. 최근 주택시장에는 정부의 '8·28 대책'에 힘입어 모처럼 '분양 훈풍(薰風)'이 불고 있지만 일부 인기 단지를 제외하고는 1순위로 청약을 마감하는 경우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경기 동탄2신도시, 평택·안성시를 비롯한 수도권 분양 단지를 중심으로 3순위 청약이 크게 늘고 있다. 3순위 청약자란 청약통장이 없는 투자자를 말한다. 청약금만 내면 누구나 3순위 청약을 할 수 있다.
◇청약통장 아끼려는 실수요자들
이번 달 경기 평택시와 안성시에서 선보인 '평택 용이 금호어울림'(2178가구)과 '안성 롯데캐슬'(2320가구)은 1·2순위 청약에서 각각 115명, 229명이 신청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3순위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1·2순위의 6~7배 수준인 859명과 1290명이 신청한 것. 지난 9월 경기 광교신도시에 공급한 '광교 경기대역 울트라 참누리'도 3순위에 361명이 찾아 평균 1.78대1의 경쟁률로 마감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3순위 청약 바람이 부는 것은 1·2순위자들이 웬만한 인기 단지가 아니고서는 청약통장 쓰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위례신도시·보금자리주택 등 앞으로 수도권에 공급될 인기 단지를 분양받으려는 실수요자들이 굳이 청약통장을 쓰기보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3순위로 신청하면서 무주택 기간을 늘려 청약 자격을 높여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자칫 1·2순위 신청으로 당첨되면 나중에 인기 단지를 분양받을 때 1순위 청약 조건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순위로 청약했던 아파트가 미분양으로 남을 경우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주택 수요자들이 3순위를 선호하는 이유다. 3순위는 청약통장을 쓰지 않기 때문에 청약 후 계약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아파트 청약에 본인이 보유한 통장을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1·2순위 청약 접수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3순위 청약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서울·인천을 제외한 경기권역에 청약통장 1순위자(청약통장 가입기간 2년 이상)와 2순위 가입자(가입기간 6개월 이상)가 많지 않은 것도 한 이유다. '부동산114' 함영진 센터장은 "동탄2신도시를 중심으로 최근 2년간 아파트 2만4000여가구가 공급되면서 신규 아파트에 신청할 수 있는 1순위 청약자 수도 크게 줄었다"며 "지방에서는 아파트 분양 후 6개월만 기다리면 되지만 서울·수도권은 2년을 기다려야 1순위가 다시 되기 때문에 통장을 더 아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3순위 청약자는 대부분 1순위 청약 자격에서 배제되는 1주택 이상 다주택자이거나 임대 수익을 올리려는 투자자들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3순위 청약 증가를 신규 주택시장 회복의 지표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 3순위 청약이 많았던 경기 평택·안성 등 수도권 남부권 아파트값은 주택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서울과 경기의 아파트값은 1.94%, 2%씩 내렸지만 평택·안성 지역은 각각 0.11%와 1.27% 올랐다. 함영진 센터장은 "연말까지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사면 양도소득세가 5년간 면제되는 것도 3순위 청약자들이 아파트 분양에 관심을 갖는 이유"라고 말했다.
◇"청약률 착시효과 주의해야"
수도권 주택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분양시장은 전반적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3순위 청약이 증가한 데 따른 청약률 착시효과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분양 대행사 관계자는 "일부 단지는 청약 경쟁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건설사나 대행사가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 3순위 청약을 하도록 권하는 경우도 있다"며 "청약 경쟁률이 어느 정도 높게 나와야 나중에 미분양 아파트를 팔 때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닥터아파트 권일 팀장은 "통상 3순위 청약은 통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단 청약을 했다가 좋은 동(棟)·호수에 당첨되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면서 "수도권이나 지방에서 1·2순위에 청약 마감이 되지 않은 단지는 향후 공급 예정 물량이나 인근 시세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청약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