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정상화하려면… 전문가 30명 설문조사]
多주택자 지원해야 주택거래·임대주택 늘릴 수 있어
집값 상승, 구매력과 직결… 물가상승률 정도는 올라야
국내수요엔 한계… 투자이민제 확대해 해외투자 유치를
정부·국회·민간 협의체 만들어 규제완화 논의 시급
집 안팔린다고 걱정만 말고 리모델링 등 활용案 고민을
"집이 두세 채라고 투기꾼이라 몰아붙일 수 있나요? 중산층이 노후를 위해 임대 사업이라도 하려면 작은 집 두어 채는 있어야 하잖아요. 주택 시장 정상화는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본지가 25~30일 건설·부동산 시장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시장 정상화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함께 "'다주택자=투기꾼'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다주택자를 지원해야 주택 거래와 임대 주택 공급이 늘어 전세난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집값 상승을 '부동산 버블'로 간주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인식도 버릴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물가상승률 정도로 집값이 올라야 전체 경제에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다.
①'다주택자=투기꾼' 인식 바꿔야
설문조사에서 전문가 30명 중 16명(53%)은 주택 시장 정상화를 위해 바뀌어야 할 점으로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보는 시선'을 꼽았다. 단, 투명한 과세 및 거래 관행 정착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주택 투자를 투기로 보는 인식은 시장 과열기에 부(富)의 분배에 대한 정서적인 불만이 바탕"이라며 "지금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신경 써야 하는 만큼 다주택자를 위한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실장도 "해외 선진국처럼 다주택자를 활용해 민간 임대 시장을 활성화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만든 규제를 완화하면 일시적으로 시장이 활성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이 비정상으로 갈 수 있다"고 밝혔다.
②"집값, 물가 수준 정도는 올라야"
주택 가격이 물가상승률 수준만큼 오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22명·73%). 이 중 4명은 소득도 물가만큼 오르는 게 전제라고 덧붙였다. 그래야 '자산 가치 상승→주택 거래량 증가→시장 정상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전국 주택 소유 가구는 전체의 58.3%(2012년)에 이른다. 절반 이상이 주택을 소유한 상황인 만큼 집값 움직임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셈이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소장은 "부동산이 국내 가구에서 차지하는 자산 비중이 큰 상황에서 주택 가격 상승은 각 가구의 구매력·소비력과 직결된다"며 "적정한 부동산 자본 차익에 대한 기대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③"해외 주택 수요자도 끌어오자"
전문가들은 시장 정상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수요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외국인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투자 이민제' 확대 등이 거론된다. 50만달러 또는 5억원 이상의 콘도·별장 등을 매입한 외국인에게 국내 거주 자격을 주는 제도로 2010년 도입됐다. 그러나 제주도 등 전국 6곳에서만 시행 중이다.
제주도는 중국인 투자 효과를 톡톡히 봤다. 중국인이 보유한 제주도 땅은 2010년 약 5만㎡에서 올 상반기 245만㎡ 이상으로 약 50배 늘었다. 남희용 주택산업연구원장은 "국내 수요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미분양이 많은 지역에 한시적으로 도입해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④국회 넘어선 협의체 만들자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 학계, 민간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규제 완화 등을 논의하는 협의체나 연구회 같은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국회 간담회에 참석해 보면 주택 시장을 잘 알고 있는 의원이 많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국회가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규제 폐지가 결국 서민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야당이 납득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만큼 협의체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⑤소비자들도 "투자에서 주거로"
전문가들은 주택 구매를 하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을 자산 증식 수단으로 보지 말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장기적으로 비싼 전세를 사는 사람들이 집을 사면서 주택 거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집이 팔리지 않는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이제는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리모델링 등을 통해 공간 활용을 어떻게 할지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이하 가나다 순)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백세시대연구소장, 김덕례 한국주택금융공사 연구위원,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 김인수 현대건설 건축사업본부장,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 김호 대림산업 건축사업본부장, 김희선 알투코리아 전무,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자문위원,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 백종탁 삼성물산 주택사업부 상무,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장성수 주거복지연대 전문위원, 조성진 대우건설 주택사업담당 상무,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이원식 대한주택건설협회 부회장,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임충희 GS건설 건축·주택사업본부장, 조만 KDI 실물자산연구팀장,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