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저소득층 40%(수도권)가 월세 내몰렸는데… 전세 대책만 쏟아진다

뉴스 이석우 기자
입력 2013.08.13 22:45

"고금리 대부업체 찾아갈 수밖에 없어"

주택임대시장 급변하는데 - 정부, 전세 대책에만 집중… 은행 등 금융권도 외면
생색만 낸 월세 대출상품 - 대출 있는 경우 한도 제한, 신용등급 낮으면 신청도 못해
선진국의 다양한 대책 - 加, 체납하면 저금리로 빌려줘… 美, 주택바우처 통해 일부 지원

서울 성동구의 방 2개짜리 다세대주택에 사는 윤모(56)씨는 작년 말 전세 보증금 1억원을 올려주는 대신 월세를 30만원씩 내기로 하고 임대 계약을 연장했다. 올 들어 벌이가 시원치 않아 석 달치 월세가 밀리는 바람에 은행을 찾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은행 창구에서는 "보증금으로 이미 6000만원을 대출받아 대출 한도가 꽉 찼고, 신용등급도 낮아 월세 대출은 힘들겠다"고 했다. 윤씨는 어쩔 수 없이 친척에게 200만원을 빌려 밀린 월세를 냈다. 그는 "요즘 전세 대출은 싸게 해 준다고 난리인데, 정작 우리처럼 월세 사는 사람은 대부업체나 찾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5~6년간 주택 임대 시장이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 바뀌고 있지만, 정부와 금융권에선 전세 대책만 쏟아내고 있다. 은행권이 가뭄에 콩 나듯 내놓는 월세 금융 상품은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은 아예 문턱조차 넘을 수 없다. 늘어가는 월세 세입자들이 주택정책과 금융 지원의 사각(死角)지대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외면하는 월세 대출 상품, 도입 5개월간 6건이 전부

지난 2월 금융감독원은 "저소득 월세 세입자도 은행에서 싼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월세 대출 상품이 출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 달 뒤 신한은행이 월세 대출 상품을 시중에 출시했다. 보증금을 일부 내고 월셋집에 사는 세입자가 보증서를 발급받고 마이너스 통장 형식으로 대출을 받으면, 은행이 집주인에게 월세를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우리은행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월세 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출시 5개월이 지났지만, 신한은행에서 팔린 월세 대출 상품은 단 1건, 우리은행은 5건에 불과하다. 월세 대출 상품 실적이 미미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미 보증금으로 대출을 받은 경우에는 대출 한도가 제한되고, 신용등급이 낮은(9~10등급) 경우에는 대출 신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작 급하게 돈이 필요한 저소득·저신용자는 대출 신청 자격이 없고, 은행 지점에서는 대출 금액이 적어 실적을 올리기 힘들다는 이유로 출시만 해 놓고 방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월세 대출 상품 실적은 파악하지 않고 있어 모르겠다"고 말했다.

은행 등 금융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전세 금융 상품에만 집중하고 있다. 금리도 주택 구입자금 대출은 최저 2.1% 수준, 전세자금은 4% 수준이다. 반면 월세 대출은 가장 저렴한 은행 금리도 4.7% 수준이고, 일반적으로는 대부업체에서 20%가 넘는 고금리로 돈을 빌려 월세를 조달하고 있다. 금융권 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시장에선 월세가 늘고 있는데도 월세 세입자를 위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월세 급증하는데, 전세 대책만 쏟아내는 정부

우리나라 임대 주택 시장은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지난해 수도권 가구에서 보증부 월세(보증금을 내고 일부는 월세를 내는 방식)와 순수 월세, 사글세 등 월세로 사는 가구 비율은 23%로 2008년의 17.6%에 비해 5.4%포인트 늘었다(국토교통부 주거실태 조사). 4가구 중 1가구는 월셋집에 산다는 의미다. 소득이 낮을수록 비율이 높아진다.

수도권 저소득층(월 가구 소득 220만원 이하)의 월세 거주 비율은 2006년 30.6%에서 지난해 40.3%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 상승세가 멈추었고,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임대 주택 시장은 월세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월세 중심의 주택 시장에 대한 대책이나 금융 상품은 전무(全無)한 실정이다.

임대 주택 시장이 월세 시장으로만 이뤄져 있는 선진국에선 다양한 월세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공적인 성격의 '렌트뱅크(Rent Bank)'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층이 월세(렌트)를 체납했을 경우 저금리로 급전(急錢)을 빌려 주는 제도다.

미국은 '주택 바우처'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의 월세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법적으로 월세 2개월치가 밀리면 집주인은 세입자를 쫓아낼 권리가 생기는데, 세입자를 위한 긴급 구호 금융은 없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금융 당국이나 정부 부처에서 공적인 성격의 국민주택 기금을 전세 대출에만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월세 대출 지원 상품에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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