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500가구 이상 의무화 추진… 연 22兆 절약
초기 건축 비용은 더 들지만… 재건축 필요 없어 경제적
이중 바닥으로 보수 쉽고, 취향·가족 수·주거문화 따라 내부구조 쉽게 바꿀 수 있어
"100년 동안 재건축을 하지 않아도 문제없는 아파트가 나온다면 어떨까?"
정부가 아파트 재건축 대신 약간의 보수나 리모델링만으로도 100년을 거뜬히 버티는 아파트를 만드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전국 주택 보급률이 2011년 102.3%에 이르는 등 대규모 공급이 필요한 시대가 지나면서 기존 주택의 주거 수준을 유지·관리하는 게 더 경제적이란 판단에서다.
국토해양부는 30여년에 한 번씩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100년을 살 수 있는 아파트만 지을 경우 향후 연평균 22조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고 14일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22.7%에서 2010년 58%(818만 가구)로 커졌다. 하지만 낡은 아파트를 새 아파트로 교체하는 기간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짧다. 영국은 128년, 미국은 72년이지만 우리는 27년밖에 안 된다.
건물의 뼈대가 되는 콘크리트는 이미 100년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내부의 배선이나 배관 수명은 30~40년이 고작이다. 이 설비가 낡고 손상되면서 거주자들이 불편함을 느껴 재건축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
국토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6월부터 건설기술연구원·건설산업연구원과 함께 아파트 수명을 늘리는 방안을 연구했다. 15일 공청회를 열고 구체적인 방안을 일반에 공개한다. 리모델링이나 유지·보수가 쉽도록 설계 기준을 바꾸고, 인증 제도를 도입해 최우수·우수 등 4등급으로 평가도 할 방침이다. 2015년부터는 500가구 이상 아파트는 의무적으로 아파트 수명을 늘리는 최소 설계 기준을 따르도록 법 개정도 추진한다.
새 설계 기준은 집주인의 취향, 가족 구성원 수 등에 따라 내부 구조를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뒀다. 보와 기둥이 천장을 받치는 방식의 기둥식 구조로 집을 짓고, 한 가구에 설치한 벽은 쉽게 짓고 부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1등급(최우수)을 받으려면 바닥을 이중으로 만들어 각종 배관과 배선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둬야 한다. 바닥만 열면 배관 등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시멘트와 함께 배관·배선을 묻기 때문에, 보수를 위해서는 바닥이나 벽을 파내야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1등급 주택을 매년 31만4000가구(전용 85㎡ 기준)씩 짓기 시작하면 향후 100년 동안 연평균 22조원을 아낄 수 있다. 33년마다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연한이 돌아온다고 했을 때, 2차례에 걸쳐 재건축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보다 리모델링을 하는 게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예산과 비슷하고, 올해 무상보육(0~2세) 예산(5조4000억원)의 4배가 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첫 재건축·리모델링 연한이 돌아오는 약 33년 후부터라, 장기적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이런 기준에 맞춘 주택을 지을 경우 기존보다 10~20% 안팎 초기 건축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도 단점이다. 정부는 건설업계의 반발을 줄이려 각종 인센티브를 도입하기로 했다. 용적률 등 건축 기준을 완화해주고, 조달청 공사에 입찰하는 건설사에 참가자격심사(PQ)에서 가점을 줄 계획이다. 소비자들에게는 아파트 수명과 관련해 높은 등급(최우수·우수)을 받은 주택을 구입하면 취득세·재산세 등을 감면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현수 연세대 실내건축학과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 내부 배관이나 욕조 등 각종 주택 부품을 편리하게 교체할 수 있는 게 장점인 만큼, 영세한 주택 부품 산업을 함께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