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용산 2200가구 절반, 평균 3억 대출… 민간社, 3兆 소송 예고

뉴스 유하룡 기자
입력 2013.03.14 03:15

6년만에 부도 '용산 후폭풍'… 주민·코레일·출자사 책임 공방
서부이촌동 주민, 보상길 막혀
"오세훈 前 시장이 사업 확대 서민 끌어들인 市가 책임져야"
코레일 5兆 자본잠식 우려
땅값 중 2조6000억은 못 받고 이미 받은 2조4000억 토해야
민간 출자사, 7500억원 허공에
회사 파산으로 자본금 다 날려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가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6년 만에 좌초하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불어닥칠 전망이다. 사업에 직접 참여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롯데관광개발 등 민간 출자사는 물론, 사업 구역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주민 2200여 가구의 연쇄 피해가 불가피하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대규모 법정 공방도 현실화하고 있다.

①허공에 뜬 서부이촌동 주민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2007년 이후 용산 사업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약 6년간 재산권 행사를 사실상 제약당해왔다. 서울시가 2007년 8월 말 이후 사업지 내 주택을 사서 들어오더라도 이주 대책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려우니 집을 살 사람이 없었고 팔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사업시행사가 부도나면서 다음 달에 사업 지정마저 취소될 위기에 몰려 주민들은 보상받을 길이 사라지게 됐다.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13일 이촌동 새마을금고에 모여 사실상 부도가 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대한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 /뉴시스

주민 중 절반 이상은 보상을 기대하고 평균 3억4000만원 이상을 금융권에서 대출받아 생활비·학자금 등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대출 이자가 연체된 가구도 적지 않다. 사업 무산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주민들의 주택이 대거 경매에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민들은 13일 "서민들을 개발 사업에 억지로 끌어들인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2006~2007년 초만 해도 이 사업은 용산차량기지만 개발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주도한 '한강르네상스' 개발 계획과 연계되면서 사업 대상지에 편입됐다. 당시는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었고 한강 조망을 활용할 수 있어 사업성이 더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많았다.

보상을 기대하며 6년간 기다린 주민들 일부는 "제2의 용산참사가 생길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서부이촌동 11개 주민 연합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찬 총무는 "가만히 있던 주민들을 사업에 끌어들인 서울시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우울증에 걸리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다들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전했다. 단독주택 등에 거주하는 주민총연합회 이복순 대표는 "주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진행했던 사업이었다"며 "이렇게 된 이상 빨리 정부나 서울시가 나서 사업을 정리해 주민들이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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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1조5000억 허공에… 대규모 소송전 불가피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들은 지금껏 투자한 4조원 중 자본금 1조원가량은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코레일은 땅값 2조4000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나머지 6000억여원도 금융비·설계비 등으로 썼다.

최대 주주 코레일의 경우 최대 5조원 안팎의 자본잠식도 우려된다. 현재 자본금 8조7000억원에는 앞으로 받을 땅값 일부인 2조6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이미 받은 땅값 2조4000억원은 돌려줘야 한다.

자본금이 줄면 회사채 발행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땅값을 돌려주려면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부채비율이 높아진다. 사업 부도로 이미 냈던 랜드마크빌딩 계약금 4161억원도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사업 무산 책임을 놓고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들 간 소송전도 예상된다. 현재 민간 출자사들이 사업 무산 시 코레일 측에 청구할 손해배상 소송 금액은 3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우선 민간 출자사들의 납입자본금(7500억원)에 법정이자 6%를 적용한 9600여억원과 지난해 CB(전환사채) 발행 당시 냈던 1125억원 등 1조여원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 출자사 관계자는 "예상 개발이익금(2조7269억원) 중 코레일을 제외한 민간 지분 2조452억원에 대해서도 기회 손실에 대한 보상금 형태로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설계비 등을 받지 못한 국내외 업체도 밀린 대금을 받기 위해 소송전에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서부이촌동 주민들도 장기간 재산권을 제약당한 것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묻겠다는 입장이다.

③정부·서울시 "나서기 어렵다"

정부나 서울시는 용산 사업이 민간사업인 만큼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다. 서승환 국토해양부 장관도 이 사업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선례를 만들 경우 부진한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개입 요구가 생기고 다른 공기업의 책임 경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13일 오전 긴급회의를 열고 철도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여부만 관리·감독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사업자가 금융 이자를 내지 못해 디폴트에 빠진 상황에서는 사업 자체에 개입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부이촌동을 사업 계획에 포함할 때는 경기가 괜찮았고 사업성도 좋아 민간 업체나 주민들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다만 서부이촌동 주민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합리적인 대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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