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암호 같은 아파트 분양 공고… 소비자 피해 부른다

뉴스 박수찬 기자
입력 2013.03.07 03:01

단편소설 5편 분량, 자격 요건 알기 어려워… 예약 당첨 뒤 부적격 처리 잇따라
정권마다 예외·특례 조항 추가, 공급자 중심 주택정책 산물
2000년 이후 규정 65번 바꿔… 10년새 공고문 길이 2배 늘어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게여러 제도 통합해 정비해야"

"이걸 진짜 읽으라는 겁니까?"

지난 1일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김수길(28)씨는 깨알보다 작은 글자로 쓰인 한 건설사 입주자 모집 공고(분양 공고)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는 김씨는 이번에 집 장만을 생각하고 있지만 제도가 복잡해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김씨가 예로 든 아파트 분양 공고 속 글자 수는 5만8000자가 넘었다. 공백까지 합하면 200자 원고지로는 500여장, 웬만한 단편소설 5편 분량이다. 민간 건설사뿐 아니라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보금자리주택 분양 공고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기도 동탄2신도시에 분양되고 있는 롯데건설의 입주자 모집 공고. 최근 관련 법과 제도가 복잡해지면서 건설사의 공고 분량이 늘 어 소비자는 물론 담당자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롯데건설 분양 홈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아파트 분양 공고문의 길이는 10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2002년 인천에서 진행된 공동 분양 광고의 경우 7개 업체가 분양 공고를 공고문 1편에 담았지만 글자 수는 2만여 자에 불과했다. 현재 동탄 아파트 분양 공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아파트 분양 공고가 이처럼 길어진 것은 방음·채광 등 아파트의 성능에 대해 제공하는 정보량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파트 분양이나 임대 관련 제도 자체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청약가점제 등 구매 자격을 제한하는 다양한 기준이 생겼고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 정권마다 새로운 조항이 추가됐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분양을 담당하는 마케팅팀에 직원이 오면 분양 공고 하나를 일주일간 공부시켜야 할 정도로 전문가가 봐도 복잡하다"고 말했다.

◇1년에 5회 꼴 주택공급 규칙 바꿔

전문가들은 이렇게 복잡한 분양 공고가 지난 30여년간 이어진 공급자 중심 주택 정책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주택 공급이 소비자와는 멀어졌다는 이야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주택이 부족하고 아파트를 분양받기만 하면 무조건 가격이 오르던 시기에 정부가 공급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의 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고, 정권마다 주택 복지를 한다며 각종 예외·특례 조항을 추가하면서 소비자들은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주택을 찾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20가구 이상 모든 주택에 대해 주택법을 적용한다. '국민주택', '민간건설중형국민주택', '도시형생활주택',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등 종류가 복잡한 데다 정권마다 우선·특별 원칙을 끼워 넣으면서 주택법을 제한적으로 적용받는 '제한적 적용 대상'만 16가지에 이르고 '적용 제외 대상'도 4가지나 된다. 일반 원칙은 없고 우선·특별 원칙이 더 많은 상황이다.

실제 집을 공급하는 세부 조건을 담은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주택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법제처에 따르면 1978년 제정된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은 올 2월까지 총 97번이나 개정됐다. 특히 2000년 이후에만 65번 바뀌어 1년에 5번꼴로 바뀌었다.

◇서민 위한 주택 제도가 더 복잡

특히 서민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주택이 복잡하다. 경기도 한 지방자치단체의 주민 복지 담당 팀장은 "주민들이 서민 대상 주택에 대해 물어봐도 제도가 복잡하고 자주 바뀌어서 LH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 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같은 보금자리주택이라고 해도 '그린벨트를 50% 이상 해제했느냐', '지방이냐 수도권이냐', '크기가 전용면적 85㎡ 초과이냐'에 따라 전매 제한 기간 등이 달라진다"며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제도를 땜질하다 보니 소비자, 특히 정보에서 소외된 서민층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1년 LH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 등 보금자리주택 사전 예약 당첨자 2만2120명 가운데 자격 미달로 부적격 처리된 사람은 1588명으로 전체의 7%에 이른다.

민간 건설사들이 공급하는 주택의 경우 부적격 처리된 사례가 청약자 가운데 5~10% 나온다. 개인이 자신의 자격 여부를 숙지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평가 기준 등이 지나치게 복잡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이 본인 조건에 맞는 주택을 쉽게 안내받을 수 있는 통합 웹사이트나 통합 콜센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금융결제원과 KB국민은행이 인터넷으로 가상 청약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고, LH가 보금자리주택에 대해 청약 자격 자가확인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청약 지역 등에 따라 실제 청약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 기회에 주택 공급 제도 전반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실장은 “민영 공급은 청약 제도를 대폭 축소하고 공공 공급은 소비자가 쉽게 이해하고 혜택을 받도록 제도를 통합·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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