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부실·불법 건설업체 근절"… 고강도 단속키로
종합건설업체 5000~6000개 등록 기준 미달업체로 추정
페이퍼컴퍼니 난립으로 입찰경쟁 수백대 1 예사
저가 하도급으로 이어져… 부실 시공 악순환 불러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경기도 기초자치단체에서 입찰업무를 맡고 있는 A씨는 최근 여러 차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조달청 입찰로 공사를 따낸 모 건설사에 업무차 전화를 걸었다가 '없는 번호'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온 것. 그는 수해복구 공사를 낙찰받은 B사의 주소를 하도급 업체들에게 알려줬다가 "가보니 그런 회사가 없더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A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시공능력도 없이 공사만 따낸 뒤 다른 업체들에 100% 하도급을 주는 '유령회사'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른바 '핸드폰 컴퍼니', '좀비 건설사'로 불리는 부실 건설사가 난립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금이나 기술자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덤핑입찰로 수주 시장 질서를 어지럽혀 건설업계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도 부실 업체를 연평균 5000여개씩 퇴출시키고 있지만 좀비처럼 죽었다가도 다시 영업하는 업체가 많아 단속에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건설업 등록 기준을 현실에 맞게 강화하고 '로또'식으로 운영되는 공공공사 입찰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실 건설사 연 5000개씩 퇴출
정부는 2008년부터 해마다 자본금·기술인력·사무실 요건 등 건설업 등록 기준에 미달하는 부적격 업체를 적발해 시장에서 퇴출시켜 왔다. 기준 미달 업체는 최대 6개월까지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고, 이후 3년 이내에 똑같은 이유로 등록기준 미달이 발생하면 등록을 말소시킨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등록기준 미달로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는 1만9308개사로 이 중 1만6409개사가 영업정지, 2899개사가 등록말소됐다. 연평균 5000여개 업체가 퇴출 대상 리스트에 오르는 셈이다.
한때 연 120조원 수준이던 국내 건설 시장은 최근 100조원대로 줄었다. 건설업체가 줄어드는 게 정상이다. 종합건설업체는 2007년 1만2942개사에서 현재 1만1528개로 11%쯤 감소했다. 하지만 전문건설업체는 2007년 4만2359개사에서 올 상반기 4만5701개로 오히려 늘었다.
국토부는 "종합건설업체의 절반가량인 5000~6000여개는 사실상 등록 기준 미달업체로 추정된다"면서 "전문건설업체는 부실 비율이 더욱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멀쩡한 건설사도 도산 우려
토목공사 전문업체로 연 매출 100억원 안팎인 A사는 올해 수주실적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A사 관계자는 "발주물량은 작년보다 20~30% 줄었는데 입찰 경쟁률은 더 높아졌다"면서 "이대로 가면 우량 업체도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부실업체 난립은 수주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300억원 미만 공사에 적용하는 적격심사제의 경우 웬만한 기준만 맞추면 입찰이 가능해 중소업체들의 입찰경쟁이 치열하다. 평균 100 대 1, 일부 공사는 300~400 대 1을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일명 '운찰제(運札制)'로 불리는 적격심사제는 한 업체가 여러 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동원, 입찰에 참여할 수록 유리하다"고 말했다. 실제 가족과 친지 명의로 5~6개의 회사를 별도로 위장 등록해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퍼컴퍼니가 늘수록 피해는 정상적인 건설사에 돌아가게 마련이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업체의 25% 이상이 단 한 건의 공사도 수주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페이퍼컴퍼니가 따낸 공사는 부실 시공과 불법 저가 하도급으로 이어진다는 점. 예를 들어 50억원 미만 공사의 경우 일부 자체 시공을 해야 하지만 이를 전부 하도급을 주는 식이다. 대한건설협회 송광일 부장은 "2000년대 들어 건설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페이퍼컴퍼니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건설업체의 경우 등록 기준 자본금 2억원을 맞추기 위해 회계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부실업체 실태조사와 처벌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실업체는 수주시장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한다"며 "건설산업과 우량 기업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