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쇼크, 매매시장에 찬물
전세 유지하려는 수요 늘고 오피스텔·도시형 생활주택 등 수익형 부동산만 인기 계속
"저금리 기조, 장기적 호재… 안전자산 선호도 높아지며 유동자산 흘러들 것" 분석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서울 강남 3구(區) 시가총액이 3개월 동안 7%가량 떨어지는 등 국내 부동산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번 미국발(發) 금융위기 역시 국내 부동산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주가 하락의 여파가 매수 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부동산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그렇지 않아도 침체한 아파트 매매시장은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거래물량이 더욱 줄고,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흡수되면서 전세금은 더 올라가 올해도 전세대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부가 금리를 낮추면 장기적으로는 금융위기가 부동산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주택시장 울상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 쇼크가 장기화되면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 규모를 줄이거나 조건을 까다롭게 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미래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 심리가 낮은 현재 상황에다 담보대출 규제까지 겹치면 매매 수요는 감소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김규정 부동산114본부장은 "올 하반기에 주택시장이 점차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이번 사태로 회복 여부가 다시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청실·우성2차단지에선 매매거래가 약 20건 성사됐고 고덕주공2단지 41.62㎡ 아파트 매매가가 4억8500만원에서 5억2000만원으로 올라가는 등 매매시장이 최근 들어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였다. 고덕 B공인중개사는 "최근의 금융위기 이후 아직은 큰 변동이 없지만 간신히 회복되려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게 아닌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전세대란, 하반기에 재현되나
가장 큰 우려는 전세시장의 불안에 있다.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금융권 규제 강화로 대출이 어려워지면 집을 사려는 수요보다 전세를 유지하려는 수요가 늘어 전세금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 서울 재개발·재건축 때문에 이주해야 할 가구도 1만6000여가구나 된다.
정부는 지난 4월 "재개발·재건축 주민 이주시기를 조절해 전세대란을 막겠다"고 발표했지만 관련 법령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반면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인해 최근 몇 년간 부동산 투자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던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의 인기는 올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부동산1번지 박원갑 소장은 "지금처럼 주택의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가 불투명해지면 수요자들이 매월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으로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먹구름 끼는 분양시장
미국발 금융위기는 분양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올해 하반기 전국 아파트 분양물량은 19만273가구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은행권이 중도금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예정돼 있던 분양이 늦춰질 가능성도 크다. 부동산 개발업체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최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규제 완화 등의 추진으로 소진 속도가 빨랐던 미분양시장도 다시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분양물량 가운데는 송파 위례신도시 등 '알짜' 보금자리사업지 물량이 많아 분양가가 낮고 뛰어난 입지를 갖춘 위례·광교신도시 등으로 수요가 몰리는 등 지역별 양극화 및 쏠림현상이 생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호재?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시장이 침체하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부에선 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사라져 오히려 이번 위기가 호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수요자 입장에선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매매 수요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안전자산인 부동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이현석 교수는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유동 자산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와 부동산 투자자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