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황 최악인데 정부 눈치까지…" CEO마다 손사래
중대형 건설사들의 모임인 한국주택협회가 신임 회장 선출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8대 회장이었던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공석(空席)이 된 회장 자리가 한 달 넘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1978년 주택법에 따라 설립된 주택협회는 주택 관련 제도 개선 등 건설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상근 부회장은 권오열 전 국토해양부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정부에 회원사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업계 이익단체인 셈이다. 주택경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요즘에는 분양가상한제 폐지,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등 해결해야 할 주요 현안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81개 회원사를 주도적으로 이끌 협회장 자리가 벌써 한 달째 공석이다. 회장직을 제안받은 대형 건설사 대표(CEO)마다 "시장 상황이 너무 나빠 회사 일에 전념해야 한다"며 다들 손사래다.
현재 주택협회 수석 부회장인 김종인 대림산업 부회장은 김중겸 전 사장이 물러난 뒤 회장 직무대행을 맡는 것조차 거부했다. 협회 이사인 대우건설 서종욱 사장도 여러 번 제안받았으나 고사했다. "작년 말 한국산업은행에 인수된 만큼 경영 실적을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할 상황"이라는 게 고사 이유다.
협회 관계자는 "회장으로 모시기 위해 여러 건설사 CEO와 접촉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건설사마다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회사 일을 제쳐놓고 협회 일에 전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진짜 이유는 '정부에 대한 눈치 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경영기획실 임원은 "최근 동반 성장을 강조하는 정부와 재계가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갈등을 빚는 것처럼 보이는데 기업의 주인이 아닌 '월급쟁이' CEO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지금은 회사 내실을 키우는 게 CEO로서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