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경영난 엔지니어링社 세계일류로 끌어올린 '뚝심'

뉴스 휴스턴=오윤희 기자
입력 2011.05.30 03:05

삼성엔지니어링 前·現 사장들, 美 휴스턴 입성해 입지 다지고
무모할 만큼 과감한 전략으로 세계1위社 꺾고 4억弗공사 따내…
삼성, 5년새 엔지니어 세 배로 늘려
훌쩍 큰 엔지니어링 산업 B1면에서 계속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 휴스턴 파크웨이(Parkway) 거리의 삼성엔지니어링 현지법인. 독서실처럼 개인 칸막이가 쳐진 책상 앞에서 엔지니어들이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새우등을 하고 앉아 열심히 설계 도면을 고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35명 중 한국인은 단 3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현지에서 스카우트한 외국인이다. 김원길 법인장은 "모두 벡텔·플루어 같은 세계 최정상급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평균 20년 이상 근무 경력을 가진 엔지니어"라고 말했다.

휴스턴은 '세계 엔지니어링의 심장부'다. 플루어·파슨스·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테크닙·머스탱·포스터 휠러….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엔지니어링 또는 정유사 등 관련 회사들이 휴스턴 시내에서 12㎞쯤 떨어진 '에너지 거리(Energy Corridor District)'에 몰려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세운 에틸렌글리콜(EG·화학 물질의 일종) 플랜트 공사 현장에서 직원들이 설계도를 보고 회의를 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08년 세계 기술력의 심장부인 미국 휴스턴에 설계 사무소 법인을 세우고 업계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제공

삼성엔지니어링은 2008년 7월 국내업체로서는 처음으로 이곳에 현지 법인을 내면서 톱 클래스 엔지니어링 회사들과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

휴스턴 진출 2년 만인 지난해 11월 결국엔 '일을 냈다'.

미국의 다우 미쓰이가 발주한 4억1000만달러(약 4100억원) 규모 염소 생산설비 플랜트 공사를 세계 엔지니어링 업계 1~2위를 달리는 플루어사를 제치고 따내 세계 엔지니어링 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것. 99년 역사에다 직원만 4만명에 달하는 '골리앗'을 직원 6000여명의 '다윗'이 꺾은 것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만성적인 경영난으로 한때 삼성그룹에서 삼성중공업·삼성테크윈과 함께 '못난이 삼형제'로 불린 골칫거리였다. 그런 회사가 글로벌 엔지니어링업계의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무서운 아이)'로 탈바꿈한 데는 2000년대 중반 이후의 과감한 혁신과 투자를 빼놓을 수 없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앞으로 세계 건설시장의 달러 박스는 플랜트"라고 확신하며, 주변에서 보기에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엔지니어링 분야의 투자는 곧 엔지니어 채용이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엔지니어링에선 엔지니어의 숫자가 곧 제조업체의 생산능력·규모와 같은 말"이라고 말했다. 2005년 말 삼성엔지니어링 전체 인력은 1800여명. 이후 매년 400~500명씩 채용했다.
세계 어느 엔지니어링업체도 전체 인력의 3분의 1에 가까운 신규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곳은 없었다. 업계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이 엔지니어를 싹쓸이한다"는 원망이 나올 정도였다. 현재 삼성엔지니어 인력은 6000여명. 5년 남짓한 사이에 3배 이상으로 커졌다.

휴스턴에 진출한 가장 큰 이유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링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플랜트 산업의 핵심은 설계, 그중에서도 뼈대 역할을 하는 게 원천 기술인 기초 설계다. 세계 최고 기술자들이 이 일을 맡는다. 삼성엔지니어링도 휴스턴 법인에서 기초 설계를 하고, 이를 토대로 서울 본사가 상세 설계와 기자재를 구입한다.

◆세계 일류들이 삼성엔지니어링에 손 내밀어

이러한 '인력'에 대한 과감한 선제적 투자는 적중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 국영 석유회사 타크리어로부터 27억3000만달러 규모 플랜트를 따내는 등 2005~2009년까지 연간 해외 수주를 평균 56% 이상 성장시켰다. 2005년 1조1166억원에 불과하던 매출도 불과 5년만인 지난해에는 5조299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해외 대형 엔지니어링 사업을 시행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세계 일류 엔지니어링회사들도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형 프로젝트에 컨소시엄을 구성해 함께 참여하자고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저히 맞추지 못하는 수익성과 공기 단축을 삼성엔지니어링은 해내기 때문이었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과거엔 우리를 아예 경쟁자로 쳐주지도 않던 일본의 치요다·JGC와 같은 엔지니어링 업체가 이젠 우리와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기석 사장은 2009년 12월 처음으로 내부 승진해 CEO 자리에 오른 인물로, 수주 확대, 사업수행 역량 강화 등으로 엔지니어링의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을 얻었다.

박 사장은 "삼성엔지니어링은 국내 1위지만 글로벌 순위로는 30위권이다"라면서 "고급 인재 유치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4년 이내에 10위권 진입, 2020년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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