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공동주택 디자인 맡은 권영걸 서울대 교수
"지금까지 아파트는 인간을 섬기기보다 자산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집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짓는 공동주택의 디자인 방향을 제시한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겸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사진>은 "흔히 디자인이라고 하면 공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질적인 정의는 자연의 도(道)를 따르고 인간을 섬기는 계획적인 과정"이라고 말했다.
LH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하나로 통합된 이후 LH 디자인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7월 권 교수 연구팀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권 교수팀이 디자인을 맡은 부분은 아파트 단지 출입구부터 울타리, 공원, 계단 등 주택 내부를 제외한 단지 전체다.
권 교수는 "LH는 한국 주택시장의 맏형 격인 만큼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의 건강을 좋게 하고 수명을 늘리는 '참살이 주거문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 우선 현란한 옥외광고는 배제하고 고층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거의 쓸모가 없었던 계단 공간의 벽을 유리소재로 만들어 밝은 빛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이 계단 공간은 화단으로 꾸밀 수도 있다.
단지 내 공용공간에는 잔디 광장을 만들어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거나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할 계획이다. 아파트 단지 경계는 담으로 구분하지 않고 나무로 둘러싸인 산책길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구분되게 했다.
지난 2007년 서울시 초대 디자인총괄본부장(부시장급)을 역임했던 권 교수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디자이너가 의도를 갖고 디자인을 한 것이어서 디자이너가 어떤 사고를 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이 낙원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권 교수가 제시한 디자인의 방향은 앞으로 LH가 시행하는 현상설계의 지침이 돼 LH가 공급하는 아파트에 적용된다.
디자인의 대가가 꼽은 최고의 디자인은 무엇일까. 그는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색 이쑤시개를 최고의 디자인으로 꼽았다. 감자, 옥수수, 고구마가 원료인 이 이쑤시개는 물에 쉽게 분해된다. 권 교수는 "녹색 이쑤시개는 인간을 섬기다가 자연의 도를 따르는 최고의 제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