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때 웃돈 안붙으면 일정액 반환"… 건설사들 막연한 기대만으로 '약속'
경기 살아나지 않아… 연쇄 도산 우려
계약자들 "보상하라" 집단소송 준비도
충남 당진에서 아파트를 분양했던 P건설회사 분양사무실에는 지난달부터 입주예정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P사는 2008년 10월 미분양 주택을 빨리 팔기 위해 '아파트 입주(2011년 4월) 시점의 집값이 최초 분양가보다 오르지 않으면 계약해지와 함께 분양대금(아파트 1채당 평균 2억원)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입주가 진행 중인 최근 이 아파트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에 분양가보다 싼 매물이 대거 나오기 시작한 것. 입주예정자들은 "약속대로 원금을 보장하라"며 계약해지와 분양대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P사는 "분양가보다 높게 거래된 아파트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2008년 이후 주택경기 침체와 함께 쌓여만 가는 미분양 아파트를 팔기 위해 도입했던 아파트 '프리미엄(웃돈) 보장제'가 주택 시장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집값이 분양 당시보다 떨어져 많게는 수백억원의 분양대금을 돌려주거나 깎아줘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프리미엄 보장제를 실시한 건설사 대부분이 자금난을 겪고 있어 자칫하면 연쇄 도산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대형 건설사인 S업체 K임원은 "미분양 마케팅에 '효자' 노릇을 했던 프리미엄 보장제가 이제는 독(毒)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가구당 3000만원 돌려줘야 할 판"
2007년 12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3000여가구의 대단지 분양에 나섰던 S건설은 1년이 지났는데 계약률이 50%를 넘지 못하자 프리미엄 보장제를 도입했다. '입주 시점에 집값이 분양가보다 낮으면 최대 3000만원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해 두달 만에 400가구를 팔았다. 하지만 현재 이 아파트의 시세는 분양가보다 평균 2000만원쯤 떨어졌다. 입주가 끝나는 다음 달 말까지 집값이 분양가 수준까지 회복되지 않으면 건설사는 떨어진 만큼 계약자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많게는 120억원까지 손해를 보게 된다"며 "워크아웃이 한창 진행 중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계약자들에게 분양금 일부를 깎아준 건설사도 있다. Y건설이 경기도 수원에 지은 K아파트 분양가는 7억2190만원(154㎡형 기준). 그러나 입주가 시작된 지난해 8월 이 아파트 시세가 6억6000만원까지 떨어지자 건설사는 가구당 평균 4500만원씩 분양대금을 깎아줬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 김규정 본부장은 "분양 후 입주 때까지 1~2년 동안 집값이 오를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으로 프리미엄 보장제를 실시한 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보상기준 놓고 갈등 잇따라
지난 2월 입주가 시작된 서울 양천구 J아파트도 프리미엄 보장제 때문에 계약자와 시공사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계약자들은 "분양가보다 낮은 매물이 수두룩하다"면서 가구당 1억원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 중이다. 그러나 시공사는 "입주 전 3개월 동안 분양가보다 높게 거래된 사례가 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충남 당진의 P아파트 계약자들은 아파트 시세가 분양가보다 내려갔는데도 '프리미엄 보장제' 적용을 거부하는 건설사에 대해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프리미엄 보장제를 둘러싼 계약자와 건설사 간의 분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아파트 시세를 판단할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 국토해양부 실거래가는 거래량이 많지 않으면 평균적인 시세를 계산하기 어려운 데다 간혹 급매물의 경우 시세보다 낮게 거래된 물건도 나오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업체가 제공하는 아파트 시세도 제각각이어서 건설사와 계약자 모두를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 한 변호사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프리미엄 보장제를 약속한 건설사에 법률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여러 이유를 들어 보상을 미루는 모습이 계약 당시 주택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수도권에서 프리미엄 보장 조건으로 분양한 아파트 입주가 본격화하고 있어 앞으로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프리미엄 보장제
건설사들이 불황기에 미분양 주택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아파트 입주 시점에서 최초 분양가에 웃돈이 붙지 않으면 일정한 금액을 돌려주거나 잔금 납부 시 깎아주기로 약속하는 마케팅 방식을 말한다. 프리미엄 보장금액은 3000만~5000만원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