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 시작된 전세난, 서민 주택까지 급속 확산… 전셋값 대려 사채도 써
집값 떨어진다는 얘기에 중산층도 전세 찾는데 정부선 소형 공급만 집중
낡은 1~2층짜리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 10일 오후 이곳 골목 모퉁이에 있는 A공인중개사사무소에 최모(50·여)씨가 들어섰다. 이 동네에서 방 2개짜리 다가구 전셋집(보증금 6500만원)에 사는 주민이었다. 최씨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1500만원 올려 달라고 했다"며 "사채로 돈을 빌려 왔다"고 말했다.
"이미 2000만원을 빌려서 은행에선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고 해요. 사채 이자가 1부 5리(이자율 연 18%)입니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지만 길거리에 나앉을 수는 없잖아요."
계약서를 쓰는 동안 전셋집을 찾는 전화가 수시로 울렸다. 전화를 받은 중개업소 사장은 "그 돈으로는 빌릴 수 있는 전셋집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달 정부가 전세 대책을 발표했지만, 전세난은 계속 심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이미 수도권 외곽의 저소득 서민층이 거주하는 다세대·다가구 밀집 지역까지 번졌다. 전국적으로는 640만여 전·월세 가구가 있다. 전세금을 구하기 위해 서민들은 사채업체를 기웃거리고, 가진 돈에 맞춰 집을 줄이다 보니 가족들의 거처가 흩어지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전세대책 발표 이후 전세금 더 올라
국토해양부가 전세 대책을 발표한 것은 지난달 13일. 하지만 전세금은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오히려 더 가파르게 올랐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전세금은 전세 대책이 발표되기 직전 주에는 일주일 동안 0.06% 올랐다. 하지만 발표 직후인 1월 3·4째 주에는 각각 0.12%, 0.15%씩 올랐다.
정부의 전세 대책의 핵심은 1~2인 가구가 살 수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과 다세대·다가구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고, 소형 분양·임대주택 9만7000가구를 최대한 빨리 공급하겠다는 것. 하지만 소형 아파트는 앞으로 2~3년이 지나야 완공돼 입주할 수 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건축 기간(6개월가량)은 짧지만 보통 가족 3~4명만 돼도 들어가 살기 힘든 20~30㎡(6~9평) 규모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1억3000만원짜리 아파트(70㎡·약 21평)에 전세로 사는 김모(35·회사원)씨 부부는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자고 해 두 달째 새집을 찾고 있다. 중개업소에서는 "1억3000만원이면 오피스텔이나 다가구 반지하밖에 없다"는 말만 들었다. 김씨는 "이달 말까지 전셋집을 못 찾으면 아이는 부모님 집에 맡겨 놓고 당분간 오피스텔에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집값 잡느라, 전세를 놓쳤다
최근 벌어지고 전세난은 다양한 요인에서 시작됐다. 우선 2~3년 전부터 주택경기가 침체하면서 주택 공급량 자체가 줄었다. 2006~2008년 사이 서울에선 아파트 입주 물량이 평균 4만5872가구였지만, 지난해에는 1만여 가구가 적은 3만6029가구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2009년 하반기부터 "앞으로 1~2년 뒤 전세난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국토부는 보금자리주택을 대거 공급해 집값을 낮추는 데에만 전력을 쏟았다. 정부는 일단 집값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전세의 수급 관리엔 실패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집을 살 여력이 있는 계층조차 "집을 살 이유가 없다"며 전세 세입자로 눌러앉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유기업원의 김정호 원장은 "집값이 급등하면 곤란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정 수준으로는 올라야 전세 수요자가 매매 수요자로 빠져나가고, 전세금이 안정될 수 있다"며 "일시적으로라도 정부가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