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로 갈아타기 확산
"매매價 이미 많이 올라 무리해서 사는 건 위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황골 주공1단지 79㎡(24평)에 전세로 살던 김모씨는 올 초 대출을 받아 같은 단지에 매물로 나온 집을 샀다. 8000만원이었던 전세금이 1억2000만원으로 올라 매매가격(2억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골 주공1단지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3개월 사이 30건 정도가 거래됐는데 이 중 70~80%는 전세로 살던 사람이 매매로 갈아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전세금이 연일 오르면서 전세 수요 일부가 매매로 전환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중이 높아져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수요자가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세금 상승이 지속되면 갈아타기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세금, 집값 비슷하게 움직여
국민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주택 전세·매매지수는 1980년대 이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전세금이 오르면 시차를 두고 집값이 올랐다.
지난해 2~3분기 전세지수는 오르면서 매매지수는 떨어지는 '탈동조화(두 가지 이상의 현상이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각각 별도로 움직이는 현상)'가 잠깐 나타났다. 그러나 10월부터는 다시 매매지수도 상승세로 돌아서 전세금과 매매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모습이다.
'부동산114'의 김규정 본부장은 "투자 목적이 아닌 경우 전세와 매매의 수요자가 같기 때문에 전세금이 오르면 전세 수요 일부가 매매로 넘어가 매매가격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시 풍덕천동의 '초입마을동아'아파트가 대표적인 경우다. 79㎡(24평) 단일 면적인 이 아파트의 전세금은 2년 전 9000만~9500만원에서 최근 1억4000만원으로 대폭 올랐다.
전세금이 오르자 일부 세입자가 매매로 돌아서면서 지난해 10월 2억~2억1000만원이던 매매가격이 2억3500만원으로 뛰었다. 단지 인근의 'D공인' 대표는 "전세금을 올려주느니 집을 사겠다는 세입자가 거래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집값 많이 올라 갈아타기 어려워졌다" 분석도
전세금이 올랐다고 집값 상승을 예상, 무리하게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주택산업연구원의 권주안 선임연구위원은 "집값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워낙 다양해 전세금이 오른다고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미 집값이 많이 오른 상태여서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국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에서 평균 전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월 말 기준 57.3%다.
전세금이 가파르게 올랐던 2002년에는 이 비중에 70%에 육박했다. 전세금 비중이 작아졌다는 것은 전세금보다 매매가격이 더 많이 올랐다는 뜻이다.
부동산1번지의 박원갑 연구소장은 "최근 전세금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매매가격은 그 이전에 더 많이 올랐다"며 "전세금 비중이 작기 때문에 전세 수요가 매매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집값 전망도 변수다. 주택산업연구원의 장성수 선임연구위원은 "전세금이 올라도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다면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