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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집도 선착순… 수백만원 주고 '예약' 대출 잔뜩 낀 '악성 물건'도 없어 못구해

뉴스 이석우 기자
입력 2011.01.18 02:59

'약발' 안먹히는 전세대책… 대한민국 전세가 동났다
계약 6개월 더 남았는데 "전세금 4000만원 올리자" 집주인 무리한 요구도

"아들(7세)이 있는 게 무슨 죄라도 됩니까."

최근 서울 동작구에서 109㎡형 아파트 전세가 나왔다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전화를 받고 집을 보러 갔던 이모(43)씨는 집주인으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었다. "아이가 있으면 집이 더러워지니 안 되겠는데요." 이씨는 "이사해야 할 날짜가 두 달밖에 안 남았으니 사정을 봐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아파트는 전세로 나온 다음 날 8명이 집을 보겠다고 찾았다. 그런데 집주인은 '애완동물 키우는 가정', '식구가 많은 가정', '아이가 있는 가정'은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고 세입자를 골랐다. 집주인은 "어차피 전셋집 찾는 사람은 많은데 같은 값이면 조건 좋은 세입자한테 주는 게 낫지 않으냐"고 말했다.

정부가 치솟는 전·월세금 안정을 위해 지난 13일 긴급 대책을 내놨지만 서민들의 전셋집 구하기 고통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매물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서는 수백만원의 계약금을 맡겨놓고 전셋집을 예약하는가 하면, 집값의 절반에 육박하는 대출을 낀 이른바 '악성 전세'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가고 있다.

반면 전세 수요자가 늘어나면서 비어 있던 새 아파트의 입주율이 높아지고 미분양 주택도 팔리며 매매시장에 일부 숨통이 트이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단지 내 부동산중개업소 유리창에 전세금을 적어놓은 전단이 붙어 있다. 최근 전세금이 오르면서 신혼부부와 서민들의 임대주택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뉴시스

◆"선착순 달리기도 아니고…"

정부는 이달 13일 올해 공공주택 13만 가구를 조기 입주시키고, 전세자금 대출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당장 전셋집이 늘어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서민들의 전세난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가장 곤욕을 치르는 계층은 올봄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 5월에 결혼할 회사원 박모(32)씨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전화를 받고 1시간 만에 달려갔는데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 전세 계약서를 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000만원을 더 주기로 하고 같은 아파트의 저층 전셋집을 구했다. 박씨는 "기다리면 전세금이 더 오를 것 같아 돈을 더 주고 다른 집을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엔 전세 매물이 부족하다 보니 부동산중개업소에 계약금 명목으로 200만~300만원을 미리 맡겨 놓고 쓸만한 전셋집이 나오면 중개업자가 대신 '가계약'을 해주는 방식까지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114 김규정 리서치센터본부장은 "중소형 전세 주택의 주수요층이 서민이나 신혼부부여서 이들이 체감하는 전세난의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세금 못 올려주면 월세라도 내든지"

전세난이 심각해지면서 약자인 세입자들은 집주인의 무리한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에 사는 황모(35·주부)씨는 "계약기간이 6개월이나 남았는데 집주인이 전세금을 4000만원 올려주든지 월세를 내든지 결정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말했다.

전세금이 부족했던 그는 월세로 30만원을 더 내기로 했지만 앞으로 아이들 학원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닥터아파트의 이영진 이사는 "전세 매물이 워낙 없다 보니 일부 세입자는 담보대출이 꽉 찬 주택까지 전세를 얻고 있다"며 "이 경우 집주인이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자칫 전세금을 날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전세금이 오르고 전세 수요가 늘면서 얼어붙었던 매매시장은 일부 해빙(解氷)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세 수요자가 빈 아파트를 찾으면서 비어 있던 아파트 입주율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작년 7월 준공 후 5가구만 입주했던 인천 청라지구의 한 아파트는 최근 입주율이 70%를 넘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잔금을 못 냈던 계약자들이 전세를 놓아 잔금을 납부하면서 입주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미분양이 많은 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금이 매매가의 70~80% 수준까지 뛰면서 값싼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세난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최근 전세금 상승세는 당장 입주할 주택이 부족해 벌어지는 현상인 만큼 정부도 딱히 대응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실장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세입자가 약자인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이들을 보호하는 방안을 좀 더 세밀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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