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업체서 174% 제시하자 다른 조합들도 인상 요구… 건설사들 입찰 포기 속출
"무상지분율이 뭐길래…."
최근 서울의 아파트 재건축 시장이 무상지분율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 무상지분율이 높을수록 재건축 후 추가 부담 없이 더 큰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건축 조합들이 높은 무상지분율을 요구하면서 시공사 선정 자체가 표류하고 있다. 여기에 수주에 목마른 일부 업체들이 일단 공사를 따고 보자며 무상지분율 높이기에 나서면서 업체 간 비방전도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상지분율이 과도하면 일반 분양가격이 높아지거나 아파트 품질이 나빠져 조합원이나 일반 소비자 모두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무상지분율로 인한 갈등의 발단은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 6단지 재건축 사업. 이 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지난 5월 현대건설·포스코건설·대우건설 등 메이저 건설사 대신 두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당시 두산건설이 선정된 이유는 경쟁사(151~162%)보다 월등히 높은 무상지분율(174%)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두산건설측은 "조합원들이 아파트 브랜드나 인지도보다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시공사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건설사들은 "두산건설이 제시한 무상지분율이 너무 높아 다른 현장까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고덕주공 6단지의 높은 무상지분율 여파는 다른 단지까지 급속히 퍼졌다. 고덕주공 2단지에서는 조합원들이 "두산건설보다 무상지분율이 너무 낮다"는 불만을 제기해 입찰에 참여했던 삼성물산 등이 입찰을 포기했다. 고덕주공3단지도 최근 대의원회를 열어 '무상지분율 175% 이상'을 제시하는 업체만 참가하는 입찰로 시공사를 선정하기로 했다.
올해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인 강동구 둔촌주공도 마찬가지. 이 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지난달 입찰 공고를 내면서 건설업체들이 무상지분율을 160% 이상 제시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이에 GS건설, 삼성건설 등은 사업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입찰을 포기하고 말았다.
실제로 조합이 무상지분율 하한선을 제시한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삼성건설, GS건설 등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현대건설컨소시엄과 ㈜한양의 경쟁으로 압축됐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이 사업을 급하게 추진하면서 시공사 선택의 폭이 매우 축소됐으며 준비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서울동부지법에 총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일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시공사를 선정하지 못하게 됐다.
고덕주공 2단지 역시 지난 5월 시공사 선정이 무산된 직후 조합 임원들이 사퇴하는 혼란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일 다시 열릴 예정이었던 시공사 선정 총회 역시 법원의 총회개최금지 가처분 결정으로 열리지 못했다.
문제는 사업이 지연되면 그 피해는 건설사와 조합원, 그리고 일반 소비자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점이다. 사업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등이 분양가에 전가되면 사업성이 악화될 수 있으며 건설업체가 무상지분율을 맞추려다 보면 아파트 품질이 떨어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현재 소송이 진행되는 단지의 경우 오는 9월 말까지 시공사 선정을 하지 못하면 공공관리자제도의 적용을 받게된다. 시공사 선정을 앞둔 조합들이 공공관리자제도 적용을 받게 되면 사업 일정이 적어도 6개월~1년 가까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건설업체들이 무상지분율을 높이면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일반분양가를 높일 수밖에 없고 높은 분양가 때문에 미분양이 발생할 수 있다. 한 대형건설회사 관계자는 "건설업체가 손해를 보고 장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높은 무상지분율을 보장했다면 건설업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일반 분양가를 높이든지 공사 원가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상지분율
무상지분율이란 재건축 조합원이 재건축 이후 추가 부담 없이 넓혀갈 수 있는 아파트 면적 비율을 말한다. 만약 무상지분율이 200%라면 대지지분이 33㎡(10평)인 조합원은 재건축 후 66㎡(20평) 아파트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 무상지분율이 높을수록 조합원들에게 유리하지만, 일반에 분양하는 아파트는 그만큼 분양가가 높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