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兆짜리 판교 알파돔시티 등 자금조달 막혀 줄줄이 좌초 위기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판교 알파돔시티 등 총 사업비 규모가 수십조원에 달하는 민관합동 공모형 PF(Project Financing) 사업 대부분이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2008년 말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성이 불투명해지면서 개발 자금 조달 길이 막힌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공모형 PF사업이란 공공기관이 제공한 땅에 기업이 대규모 주거·상업·업무시설 등이 어우러진 복합 단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2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사업비만 30조원에 달해 사상 최대의 민관합동 개발로 꼽히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자금 조달을 놓고 출자회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3월 말 이후 토지중도금을 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사업비가 5조원에 달하는 판교신도시 알파돔시티도 현재 계획으로는 사업을 끌고 갈 수 없다고 판단, 사업 규모를 전면 재조정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10년간 31개 프로젝트 중 단 4건만 완료
20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추진된 공모형 PF사업은 총 31개에 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업이 완료된 프로젝트는 단 4개에 불과하다. 착공에 들어간 것도 4개뿐이다. 나머지 23개 사업은 땅을 사고 있거나 분양을 준비하고 있는 등 대부분 초기 단계에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판교신도시 알파돔시티는 최근 1조원 규모의 PF 자금 조달에 실패해 사업계획이 1년 이상 늦어졌다.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줘야 상가와 아파트 등을 지어서 분양해 수익을 챙길 수 있는데 경기 침체로 분양 성공 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파주 운정신도시에 추진 중인 '유니온아크', 경기 광명역세권에 들어설 '엠사이어티' 등 다른 민관합동 PF 사업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준공된 사업장 중에서도 일부는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실패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너도나도 짓고 보자" 개발계획 남발
그렇다면, 민관합동 공모형 PF 사업이 위기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민관합동 개발은 공공부문이 땅을 제공하고, 인·허가도 담당해 사업속도를 높이면서 민간의 자본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그러나 수십조원에 달하는 공모형 PF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도 없이 개별 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공멸(共滅)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6년 이후 추진된 공모형 PF사업만 총 21개에 달하다. 이 중 수도권에만 15개가 몰려 있다. 서울시청 기준 반경 30㎞ 이내에 8개가 있고, 나머지도 대부분 반경 60㎞ 안에서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공모형 PF사업으로 건설되는 복합단지 대부분이 백화점, 할인점, 멀티플렉스 영화관, 주상복합 아파트, 스포츠센터 등 거의 유사한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정된 지역에서 차별성이 없는 똑같은 상품이 무더기로 공급되다 보니 수요를 맞추기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사업성 저하로 금융권에서 자금 조달을 외면하는 상황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면밀한 사업성 분석 없이 여러 주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진행 중인 메타폴리스 사업장의 한 관계자는 "나중에 들어서는 사업장이 더 좋은 입지에 만들어지면 기존 사업장은 망하라는 얘기밖에 안된다"고 털어놨다.
◆엉성한 계획서, 역할 분담도 불완전
공모형 PF사업이 표류하는 또 다른 원인은 경기 변동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사업계획과 불완전한 역할 분담이다. 치밀한 사업성 분석 없이 낙관적으로 사업계획을 짜다 보니 시장 상황이 조금도 나빠져도 사업추진이 힘들게 된 것이다. 결국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사업계획이 축소 또는 변경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공모형 PF 참여자 간 역할 분담이 불완전한 것도 문제다. 공모형 PF는 크게 전략적 투자자, 재무적 투자자, 건설 투자자로 구성된다. 재무적 투자자들은 이론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뒤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건설사에 PF대출금에 대한 지급보증을 서게 한 뒤 담보대출 형식으로 자금을 투자한다. 이러다 보니 건설업체들은 "위험을 혼자 감수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은 "금융권은 단순 대출자가 아니라 재무적 투자자인 만큼 위험 분담과 재원조달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