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부동산 시장 어디로
폭락론… 가계 부채 부담스런 수준 美·日 붕괴 직전과 유사 조정 본격화 시 급락 위험
반등론… IMF 때와는 상황 달라 물가보다 집값 상승률 낮고 재건축 등 멸실주택 늘어
최근 부동산 시장에 '폭락론'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또다시 배회하고 있다. 2008년 말 급락했던 집값이 지난해 중반 반짝 반등한 뒤, 작년 말 이후 다시 약세로 돌아서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더블딥(double dip·이중침체)' 현상이 나타난 게 발단이 됐다. 폭락론의 기수(旗手)는 금융기관 연구소들이다. 이들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높은 가계부채, 소득대비 지나치게 높은 주택가격 등을 이유로 버블(거품)이 깨지고, 집값이 장기 하락할 것이란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 가격 거품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택 가격의 동시다발적 폭락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며 곧 반등할 것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폭락론이 현실이 될지, 논란으로 끝날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집값이 당장 회복세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금융기관 연구소, "집값 상승 끝났다"
최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중장기 주택시장 변화요인 점검 및 전망'이란 보고서에서 "주택가격이 중장기적으로 완만하게 하락할 가능성이 있지만, 가계 부채 조정이 본격화되면 주택가격이 폭락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인구 구조 변화를 꼽았다. 주택시장 최대 수요계층인 35~55세 인구가 내년부터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2010년 현재 35~55세 인구는 총 인구의 35%(1727만명)를 차지하고 있지만 내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의 김완중 연구위원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베이비 붐 세대들의 은퇴로 35~55세 인구가 감소한 시점과 주택가격 하락 시점이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집값과 부담스러운 수준의 가계부채도 대세 하락설의 근거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올 3분기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만 58조원이 넘는데, 이 중 3분의 1은 차환이 어려워 부동산 처분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 연구소는 국내 주택담보대출의 담보력이 양호해 가능성은 제한적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그동안 집값이 조정을 겪지 않은 만큼 가계부채 조정이 본격화되면 급락 위험도 그만큼 크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아파트 가격 하락 가능성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서울에서 평균 소득의 근로자가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13년간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66㎡짜리 한 채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으로 집을 못 사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2000년 83.7%에서 2008년 139.9%로 급등해 추가 대출여력도 많지 않다는 것. 수요가 부진하면 결국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산은경제연구소도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최근 발표한 '국내 주택가격 적정성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국내 주택시장 상황이 과거 미국과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과 유사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는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가구소득 대비 12.64배라면서 "2006년 미국의 부동산 버블 때보다 정도가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집값 폭락했던 IMF 때와는 달라
폭락론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시계를 1998년으로 돌려보면 폭락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사실상 국가 부도 사태에 빠졌고, 주택 시장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불패(不敗)라던 강남 아파트값은 반토막 났고, 경매 시장엔 매물이 쏟아졌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그해 전국 아파트값은 평균 13.6% 하락해 1986년 조사 이래 최고의 하락률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전부터 주택 시장은 이미 빈사상태였다. 주택 200만호 건설에 따른 공급 과잉 영향으로 집값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91년부터 95년까지 집값 상승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거나 제자리걸음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죽어가던 시장에 외환위기라는 쇼크까지 가해져 완전히 무너졌던 것"이라며 "당시 주택업체들의 도산이 잇따르는 등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결국 2~3년 뒤 집값이 뛰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집값은 외환위기 이듬해인 99년 8.5% 올랐다가, 2000년에 잠깐 주춤한 뒤, 2001년과 2002년엔 10~20%대의 폭등세를 연출했다.
최근 주택 시장은 수급 요인으로 보면 상승 압력이 높지만, 금융 규제와 보금자리주택이 이를 완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6년 이후 주택공급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뉴타운 등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멸실주택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폭락론을 일축하는 이들은 소득대비 집값 비율(PIR)이 높다는 것도 비교 대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국토해양부도 일부 연구소의 PIR 산정에 대해, "일본은 땅값, 미국은 주택가격, 한국은 아파트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면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아파트가 아닌 전체 주택가격으로 보면 1987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178% 상승한 반면, 전국 주택가격은 141% 상승해 집값이 물가상승률보다 오히려 낮다"고 말했다. OECD 역시 지난 2007년 한국 경제보고서를 통해 "지난 20년간 한국의 연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4.7%)과 주택가격 상승률(3.7%)을 감안하면 버블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었다.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 박원갑 소장은 "대체로 거품은 주택시장 외부에서 갑작스러운 쇼크가 닥치면 잠재된 모순이 터지면서 꺼지게 된다"면서 "지금 폭락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언제 올지 모르는 외부 충격을 예견하는 예언자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집값 반등 여부, 연말쯤 돼야 알 수 있어"
폭락은 아니지만, 집값 하락세가 올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내년 초쯤 실물경기가 회복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퍼지면 다소 회복세로 전환할 수는 있겠지만, 회복세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 주택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올 연말 다가구 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 조치가 종료됨에 따라 감세 혜택을 받기 위해 대형 주택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 김희선 전무는 "지금도 대형 주택은 수요가 없고 하락폭이 크지만, 올 연말에는 대형 주택 매물이 늘어나 가격이 더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주택시장에 적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책인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DTI는 소득 수준에 따라 주택담보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정책이고, LTV는 주택 가격에 따라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제도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대출규제는 집값 규제가 아니라 개인의 부채규모를 제한하는 제도여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국대 고성수 교수는 "주택경기가 계속 침체될 경우 DTI를 일정 수준 완화해 시장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