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부 부처 고위 공직자와 산하단체 기관장 5명 중 1명은 서울 강남과 과천시에 재건축 아파트를 1채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건축 아파트를 소유한 공직자들은 재건축을 포함, 평균 2.4채의 주택이나 상가, 오피스텔도 갖고 있다. 민간부동산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공직자라고 해서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못 살 이유는 없다"면서도 "재건축을 포함해 3~4채씩 건물을 갖고 있는 것은 '투자'라기보다는 '투기'로 의심할 만한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해당 공직자들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개포 주공아파트에만 16명 투자
12일 본지가 최근 재산이 공개된 정부 부처 고위 공직자와 산하단체 기관장 708명의 부동산 보유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142명(20%)이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개구와 경기 과천에 재건축 대상 아파트(분양권 포함) 152채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별로 청와대 진영곤 사회정책수석비서관(본인 1채 모친 1채)과 손교명 정무2비서관,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분양권) 등 10명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2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개포동 현대아파트 2채, 개포동 주공1단지 1채 등 3채의 재건축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갖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 중인 재건축 아파트는 강남 개포동 주공아파트로 총 16명이었다. 개포동 주공 1단지는 50㎡(15평)짜리 아파트가 현재 10억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3.3㎡(1평)당 6600만원 수준이다. 강남 재건축 보유자들은 다른 아파트나 상가, 오피스텔을 보유한 사례도 많았다. 재건축 아파트 소유자 27명은 다른 지역에도 4채 이상의 건물을 함께 갖고 있었다. 양명승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과 박인제 국민권익위원회 사무처장은 강남 재건축을 포함해 총 7채, 조태용 외교통상부 의전장은 6채를 각각 신고했다.
◆공직자들 “상속, 실거주용이 대부분”
공직자 재산공개 서류상으로 건물 보유 수가 많은 공직자들은 대부분 실거주 목적이거나, 상속 받은 주택, 수입이 있는 자녀 명의,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인 부인의 건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양명승 원자력연구원 원장 측은 등록돼 있는 7채의 건물에 대해 서울 반포동의 재건축 아파트는 부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서울 중구의 본인 명의 상가는 “오래 전 부모로부터 상속 받은 것으로 사실상 한 건물이지만, 등본 상 2채로 돼 있다”고 밝혔다. 또 양천구의 아파트는 직장에 다니는 장녀가 본인 자금으로 구입했고, 반포동 아파트는 모친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전 아파트 2채 중 한채는 올 2월에 매도, 한 채는 본인 거주용이라고 밝혔다.
양 원장 측은 “건수로는 건물이 많아 보이지만 실거주 목적이 아닌 것은 없다”고 했다. 공직자 재산공개 서류 상 건물 건수가 5채인 외교통상부 정의민 본부대사는 강남구 역삼동의 재건축 아파트와 다른 부동산은 이미 매도해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따라서 “콘도를 제외하면 실제는 빌라와 오피스텔 한 채씩만 보유하고 있어 부동산이 과다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감사원 신고대상 45%가 재건축 보유
소속 기관별로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하는 성향이 달랐다. 감사원·국민권익위원회·검찰청 등 소위 권력형·실세 기관일수록 강남 재건축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사원이 재산공개 대상 11명 중 5명(45%)이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보유해 1위를 차지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0명 중 4명(40%)으로 2위였다. 강남 재건축을 보유한 권익위 공직자들은 평균 4채의 주택과 상가도 갖고 있었다. 박인제 사무처장은 재건축 아파트 외에 송파구와 서대문구에 총 7채(신고가액 38억원)의 빌딩과 상가·오피스텔을 보유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출신 이영근 부위원장은 대치동 쌍용(2억8000만원)과 도곡동 타워팰리스(15억원), 양재동 상가 3채(26억원) 등 총 5채의 건물(51억원)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박인제 처장은 본인은 변호사, 부인은 의사 출신이어서 과거 사무실이나 병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 등을 구입했지만, 매도 시점을 놓쳐 많은 건물을 보유한 것 처럼 돼 있고, 이영근 부위원장은 상속받은 재산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검찰청 소속 검사들도 45명 중 17명(37%)이 강남 재건축을 갖고 있지만, 12명이 1주택자여서 투자 차원보다는 실거주 목적으로 보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음으로 지식경제부(36.5%), 외교통상부(31.4%), 법무부(30.8%) 순이었다. 청와대는 50명 중 9명이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11채를 갖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상위 순위를 차지한 것은 민간 기업의 CEO 출신들이 산하 단체장으로 많이 재직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는 통계 오류를 막기 위해 재산공개 대상자가 10명 미만인 기관은 소속 기관별 순위에서는 제외했다.
◆강남 재건축 6년새 두 배 상승
주택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해양부는 신고 대상자 43명 중 단 3명(7%)만이 재건축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 정보를 많이 다루다 보니 강남 재건축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 오히려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를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부·농림수산식품부·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고위공직자 중에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하는 비율도 10% 미만으로 적었다.
국방부 장성들은 47명 중 10명이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모두 1주택밖에 없어 실거주 용도로 구입한 것으로 분석됐다. 외교통상부의 경우, 강남 재건축을 갖고 있다고 신고한 16명의 공직자들이 보유한 건물 수가 총 43채이다. 투자 목적으로 강남 재건축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정부가 제공하는 관사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부동산 재테크 방식은 전혀 달랐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강남 3구 재건축 아파트의 3.3㎡(1평)당 평균 매매가는 2004년 2003만원에서 2007년에는 3574만원, 지난해 3648만원까지 뛰었다. 현재는 3660만원선에 거래된다. 2004년에 샀다면 거의 두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조사 어떻게 했나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은 매년 재산변동 내역에 대해 보고를 하고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이를 공개한다. 이번 조사는 공직자윤리위에서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중앙부처 1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정부 산하단체 기관장의 서울 강남권과 과천 재건축 아파트 보유 현황을 조사한 것이다.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부모와 자녀는 공개를 거부할 수 있어 재산 내역에서 빠진다.
※이 기사 작성에는 진상훈·강혜원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