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입주 지연으로 자금난 심화… 성원건설 이어 연쇄부도 공포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97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중견 건설업체인 성원건설이 사실상 ‘퇴출 판정’을 받으면서 건설업계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미분양 증가는 당장 건설업계의 20조원대 자금회수를 가로막고, 연내 만기가 도래할 40조원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3월 11일 지방 미분양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A건설사의 김모 부장은 협력업체로부터 독촉전화를 받았다. 지난 3개월간 대금 지급이 전면 중단되면서 협력사들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회사가 어렵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현재 그는 다른 건설사에 이력서를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이 김 부장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웬만한 중견 건설업체들이 맞닥뜨린 문제다. 짓고 있는 아파트는 팔리지 않고 금융권 대출은 막힌 채 새 사업을 하려 해도 수주가 안되는 악성 구조다. 2009년 초 정부가 건설사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금융권의 자금압박이 심해졌고 지난해 가을의 대출규제 확산 이후 주택시장 침체의 골도 깊어지고 있어 중견 건설사들의 경영환경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벼랑 끝에 선 건설사들
건설사 자금난의 핵심은 미분양 아파트보다 불 꺼진 아파트다. 입주가 완료돼야 잔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입주가 지연되고 미입주 가구가 늘어나면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가 대신 빚을 갚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
건설사들은 계약 때보다 입주 때의 잔금이 더 큰 방식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왔다. 계약금 5%, 중도금 무이자 등의 조건으로 아파트를 분양했기 때문이다. 들어온 돈은 분양가의 5%인 계약금뿐이고 나머지는 입주 때 받는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초기 PF에다 계약률을 근거로 ABCP(자산유동화담보부어음)를 발행해 사업자금을 추가로 빌렸다”며 “입주 이후 갚을 빚인데 요즘 상황을 봐서는 상환이 곤란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면서 신규 PF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D건설사 자금 부장은 “시중은행들은 아예 접근조차 어렵고 저축은행이나 증권회사와 접촉했으나 올 들어서는 이마저 맥이 끊겼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주택시장이 불안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며 “PF 한도를 정해 놓고 기존 대출금 상환으로 여유가 생길 경우에만 PF를 다룬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신규 사업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에서 이달 아파트를 분양할 예정이었던 E건설사는 올 하반기로 분양 시기를 늦췄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금융권으로부터 기존 대출금을 어느 선까지 갚아야만 신규 분양사업 대출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월 위기설… 살생부 돌아
시공능력 54위의 성원건설 퇴출은 벼랑 끝에 몰린 건설업계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업계에선 연초부터 3월 위기설, 5월 위기설 등이 불거져 나왔다. 성원 외에도 5~7개 건설사가 곧 정리된다는 ‘살생부’마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은행들은 “문제가 발생하는 건설사는 곧바로 신용위험평가를 해 퇴출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지난해 B등급을 받았던 곳 중에서 추가로 10곳 이상이 워크아웃(C등급)이나 퇴출(D등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과 채권은행들은 신용 공여액 500억원 이상 기업에 대한 정기 신용위험평가가 시작되는 4월부터 건설업종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B건설사 관계자는 “1년 안에 부도 도미노와 2차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며 “주택사업 비중이 70%가 넘는 곳이라면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건실한 업체로 분류됐던 곳도 예외가 아니다.
중견 건설업체의 경영난은, 들어올 돈이 안 들어오고 새 사업자금 조달도 막힌 상황이라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모 회계법인의 공인회계사는 “요즘 감사 중인 한 중견 건설사는 우발채무가 급증하고 자산이 확 줄어드는 등 지난해에 비해 훨씬 부실해졌다”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가 신용등급을 보유한 37개 건설업체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190.2%로 2008년 6월 말보다 16%포인트 상승했다. PF를 포함한 조정 부채비율은 350.2%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견 건설업체들은 신용등급이 없기 때문에 이 조사에서 제외됐다.
한 회계법인의 관계자는 “중견 건설사들은 대부분 조정 부채비율이 400%를 웃돌고 일부는 자본잠식 상태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하이투자증권 김익상 크레디트애널리스트는 “중견 건설사들은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미분양 주택 증가, 공공부문의 저가 수주경쟁 심화, 해외사업 확대에 따른 자금압박 등으로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권의 타격도 예상된다. 저축은행업계는 ‘중견 건설사 해외사업장발 부실 쓰나미’가 화두다. 중견 건설사가 벌인 해외 개발사업에 돈을 빌려준 경우가 많은데 담보가 불확실하고 저축은행들은 후순위 채권자여서 많은 돈을 떼일 것이라는 얘기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은 안전장치를 갖춰 놓는데 해외 개발사업은 경험 부족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저축은행당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돈을 떼일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업계 “숨통은 틔워줘야”
건설 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은 미분양 아파트를 해소하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전월보다 소폭(3.5%) 줄어들긴 했지만 11만9039가구에 이른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미분양은 2만5826가구로 3개월째 증가세다. 지방은 분양률이 저조한 2개 현장의 분양이 취소돼 1194가구가 통계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준공 후 미분양은 전국적으로 4만8469가구에 달한다. 평균 분양가를 3억원으로만 잡아도 약 14조5000억원의 분양대금이 묶여 있는 셈이다.
분양 실패는 PF의 부실을 낳고, 이는 곧 금융권의 상환 연장 거부로 이어진다. 주택사업에 올인했던 중견업체들을 중심으로 건설업계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중견업체 한 곳이 무너지면 많게는 협력업체 300여곳의 생사가 불투명해진다.
건설업계는 “주택시장의 거래만이라도 이뤄질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돈맥경화’가 심각한 만큼 양도세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등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한국주택협회의 한 관계자는 “금융규제 강화로 주택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신규 분양시장마저 위축되고 있어 건설사들의 연쇄부도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양도세와 취득·등록세 감면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추경호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부동산 대책이라기보다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규제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나 금융권은 중견건설업체의 위기는 언젠가는 겪고 넘어야 할 통과의례로 보고 있다. 한국주택협회 회장 등 건설 관련 3개 단체장이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주택시장을 살려 달라”고 정부에 호소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하라는 구조조정은 제대로 하지 않고 규제 완화만 바란다는 식으로 청와대에 비쳐져 역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기업금융실 신응호 국장은 “상시평가 체제를 통해 부실 정도가 심한 건설업체는 빨리 정리한다는 게 금융 당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 성선화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기자
주간조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