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 주공' 사업비만 4兆… 건설사 직원 총동원 '사활'
조합원에 갈비세트·접대… 미확인 소문 난무 혼탁 양상
"아휴~ 어떻게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는지. 요즘엔 매일 전화를 해대는 통에 짜증이 날 정도예요."
서울의 대표적 저층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최근 재건축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이 단지는 오는 5월 9일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건설사들의 사활을 건 수주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5930가구인 이 아파트는 9000여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10위권 업체를 포함해 10여개사가 이미 작년 말부터 조합원 표심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건설사마다 적게는 30~40명, 많게는 100여명이 동원돼 치열한 홍보전을 펴고 있다. 재개발 수주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수주활동을 위해 동원된 일명 OS요원(주부 도우미)만 수백명에 달한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업체 간 경쟁이 과열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건축 수주, 무한경쟁으로 혼탁 양상
"공공 공사는 계속 줄어들죠. 주택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안 보이죠. 재건축은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어요."
최근 만난 대형 건설사 재건축 수주담당 임원은 "모든 건설사가 재건축에 올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둔촌주공아파트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사업비만 최대 4조원으로 추정되는 데다, 강남 노른자위에 얼마 안 남은 저층 재건축 단지이기 때문이다. 부동산114 이호연 과장은 "건설사 입장에서는 둔촌주공이 향후 추진될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수주전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권에서는 앞으로 대치동 은마(4424가구), 압구정동 현대(1만가구), 개포동 개포지구(2만8700여가구) 등 초대형 재건축 단지들이 시공사를 선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건설사마다 기선을 잡기 위해 둔춘주공에 총력전을 벌이면서 벌써부터 혼탁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는 갈비세트를 돌렸다", "△△건설은 조합원을 초청해 모델하우스 단체 관람을 시키고 선물을 줬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찰조건을 만들기 위해 여론몰이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건설사들이 입찰 공고가 나기도 전부터 이곳에 들어와 대의원 포섭에 안간힘을 쓰더니 최근엔 일반 조합원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S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건설사 관련 직원들이 대거 나타나면서 인근 음식점들이 호황을 누리면서 권리금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수주전 과열은 모두가 손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합원들 사이에는 건설사 간 과열 경쟁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둔촌주공 정비사업조합측은 "수주전이 지나치면 결과적으로 조합원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다"면서 "과열 경쟁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과열 수주전은 재건축 조합원은 물론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수주전에 투입된 비용이 조합원 부담금으로 되돌아오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아파트 분양가를 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0년대 중반 강남 재건축 시장의 가격 폭등을 가져온 원인도 건설사들의 도를 넘어선 수주전이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건설사들은 수주 과정에서 매번 업체당 50억~100억원 안팎의 비용을 쏟아부었고, CEO까지 나서 수주활동을 지원했었다. 이 때문에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곳곳에서 조합원 부담금이 늘어나면서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 건설사들 역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도 입찰에서 탈락하면서 적지 않은 경영상 부담을 안아야 했다.